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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 플랫폼? 콘텐츠?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은?

브랜드는 이제, 플랫폼이자 콘텐츠가 되어야 합니다.

by Roi Whang

브랜드들이 다시 ‘자사 플랫폼’, ‘직접 유통’, ‘경험 설계’에 나서고 있습니다. 단순히 입점을 넘어서, 유통 구조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흐름입니다. 이는 곧 소비자 관계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최근 업계 전반에서 흥미로운 전환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브랜드들이 유통 플랫폼 위에서 경쟁하기보다 스스로 판을 만들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플랫폼에 의존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직접 소비자를 설계하고 접점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이는 단순한 구조 변화가 아니라 소비자와의 관계를 근본부터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네이버의 스페인 C2C 플랫폼 왈라팝 인수입니다. 70.5%의 지분을 추가 확보하면서 유럽 C2C 시장에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전략을 드러냈죠. 중요한 건 금액보다 구조입니다. 플랫폼의 고객, 데이터를 통째로 끌어안고 브랜드가 주체가 되는 구조. 소비자가 머무는 장소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만들어버리는 방식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굿웨어몰도 흥미롭습니다. 신성통상이 자사몰을 통해 외부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회원 전용 이벤트를 늘려가며 거래액을 끌어올리고 있죠. 단순한 ‘판매 창구’에서 ‘소비자 경험 플랫폼’으로 기능을 확장하는 셈입니다. 브랜드가 더는 마켓의 이용자가 아니라 운영자가 되려는 방식이에요.


브랜드는_이제,_플랫폼이자_콘텐츠가_되어야_합니다3.jpg 현대백화점, 자체 카페 브랜드 ‘틸화이트’ 1호점 오픈


오프라인 전략도 바뀌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자체 F&B 브랜드 ‘틸화이트’를 론칭하며 더현대 서울에 1호점을 열었습니다. 카페를 단순 편의 공간이 아닌 경험 중심 콘텐츠로 재정의한 사례입니다. 소비자와의 접점을 외주화 하지 않고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려는 시도죠. ‘기획력 있는 유통사’라는 포지셔닝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리테일 업계 전반에서 확인됩니다. 투미는 중국 상하이에 고급형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고 코닥어패럴은 서울 주요 상권에 문화·관광 복합 공간을 지향하는 플래그십을 선보였어요. 공간은 더 이상 단순 매장이 아닙니다. 브랜드의 철학을 오감으로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가 되고 있어요.


이제 중요한 건 상품보다 ‘관계의 맥락’입니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브랜드를 경험하는 방식이 무디면 소비자는 떠납니다. 그래서 브랜드는 유통을 ‘기능’이 아닌 ‘서사’로 만들고 있는 거죠. 매장, 앱, 콘텐츠, 이벤트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소비자의 정서에 파고들 수 있어야 해요. 단일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경험한다는 감각을 제공해야 하니까요.


브랜드는_이제,_플랫폼이자_콘텐츠가_되어야_합니다4.jpg 29CM, DDP디자인페어 공동 개최


최근 29CM가 DDP디자인페어를 공동 개최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브랜드를 보여주는 방식이 더는 이미지나 텍스트에 머물지 않습니다. 체험형 전시를 통해 브랜드의 세계관과 가치, 취향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예요. 경험은 단순 소비보다 오래 남고 관계는 반복될수록 의미를 갖습니다. 29CM는 바로 그 관계의 형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 거죠.


이커머스 기업인 에이블리도 플랫폼 내에서의 전략을 바꾸고 있습니다. 데이터 기반 트렌드 분석을 통해 ‘피셔맨 코어’라는 새로운 스타일 무드를 선점했고 이를 통해 거래액이 전년 대비 40% 상승했어요. 트렌드를 팔기보다 브랜드가 감도 있는 큐레이터가 되어 새로운 감성을 이끄는 구조로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제품이 아니라 기획을 팔고 있는 거죠.


브랜드는_이제,_플랫폼이자_콘텐츠가_되어야_합니다2.jpg 에이블리, 피셔맨 코어 트렌드로 거래액 40% 상승


이런 변화는 단지 잘 나가는 브랜드 몇 개의 실험이 아닙니다. 산업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예요. 유통사의 플랫폼도, 브랜드의 유통 전략도 소비자의 쇼핑 방식도 모두 달라지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주체성입니다. 브랜드가 다시 스스로의 판을 만들고 있다는 점. 타인의 구조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은 이제 도구가 아니라 전략의 핵심입니다. 입점과 광고만으로 성과를 기대하던 시대는 끝났어요. 지금은 브랜드가 콘텐츠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직접 관계를 설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브랜드가 그리는 플랫폼 위에 누가 먼저 소비자의 시간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에요.


결국 우리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플랫폼 위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플랫폼을 직접 만드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요? 점점 더 많은 브랜드가 후자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유통 전략의 진화가 아니라 브랜드 전략의 본질적 전환으로 읽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소비자는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가 만든 ‘구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다음 세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Date: 2025.08.06 | Editor: Roi W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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