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0. 홍시와 그리운 남편
퇴근길 아빠가 또 전화했다. 내려오냐고 물으셨다. 아빠는 내가 사무직 일을 하는 줄 아신다. 그러니 순댓국집에서 일한다고 고달프게 몸을 혹사한 퀭하게 기울어진 초췌한 기색을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있자니 남편이 왔다 갔다 하던 발소리가 나는 것 같고, 서재에서 불쑥 나와 배고프다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말할 것 같고, 함께 영화를 보며 세월을 보낸 3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자꾸 떠올랐다. 지우기는 싫어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 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들여다봤다. 혹여나 아이클라우드에 사진이 몽땅 분실될까 봐 컴퓨터에도 모두 폴더에 저장해 놓았다. 아침밥을 차려주면 꼭 싹싹 비우고 나가던 남편, 저녁도 집에서 먹어야 속이 편하다며 집밥을 고수하는 남편이 좋았다. 내 밥을 싹싹 먹는 남편은 그냥 좋았다. 영화 취향도 잘 맞고 책 읽는 취향이나, 등산의 취미도 같고, 밤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하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좋았다. 그 모든 게 어느 날부터 소원해지더니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추며 남편도 사라졌다. 그 사람을 잡을 명목은 없었다. 늘 조용히 나에게 미소를 짓던 남편이 내민 종이 한 장에 이혼 사유 적힌 10가지를 들이대며 이치에 맞게 조목조목 설명을 할 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져 들었다. 멍하니 들으며 다 맞는 말이고 남편의 말이 다 맞았지만, 결론이 이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곤, <결혼하는 여자에게 아이가 생겼다 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그를 놓았다.
그 이후 아빠는 내가 한시라도 전화를 안 받는 날엔 당장이라도 뛰어 서울로 올라올 채비를 마친 사람처럼 굴어서 아빠에겐 휴가인데,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집에서 쉰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푹 쉬라며 잘 익은 홍시를 보내주신다고 했다. 이젠 먹는 사람도 없는 홍시. 여름에 감이 연둣빛으로 매달렸을 때부터 올해엔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고 말씀하셨던 그 홍시가 드디어 빨갛게 익었나 보다. 아빠는 딸이 홍시를 예전처럼 마구 먹는 줄 아신다. 원래는 좋아했는데 싫어하게 된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남편이랑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버지가 보내신 홍시를 먹었던 기억을 하니 남편이 얄미웠다. 아빠가 나 먹으라고 예쁜 것만 골라 담아주셨을 것을 뻔히 아는데, 나보다 홍시를 더 잘 먹던 남편은 다른 여자를 따라 떠났다. 워낙 무뚝뚝하고 여자를 밝히는 성격도 아니었고 무던하고 무난하던 인간이었는데. 사람의 본성이란 원래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치를 잘 실행한 덕분에 남편은 바람이 났다. 그리곤 그 여자만을 위해 우리 집을 떠났다. 아니, 아이도 지킨다는 명분 하나를 더 내세우며…….
홍시는 다음 날 바로 도착을 했다. 날이 따스해 택배 창고에서 맛있게 잘도 익어왔다. 아빠는 홍시가 행여나 망가질까 봐 하나하나 손수 신문지로 둘둘 말아 보내셨는데, 상자 옆에는 또 신문지를 야구공만 하게 구겨 충격방지제까지 만들어 넣으셨다. 어떤 건 익어서 터져 감식초 냄새가 났고 어떤 건 자신의 본연의 맑고 단단한 주황빛을 내 뽑고 있었다. 막걸리 식초 냄새가 나는 물텅거리 거 같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감을 풀었더니 시큼한 냄새와 날파리가 방금이라도 모여들 것 같았다. 축 처진 감. 늙어서 물을 줄줄 흘리며 상해 터진 모습이 내 헝클어진 머리, 생기 없는 입술, 누렇게 변한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 같았다. 시금한 냄새가 나는 홍시가 꼭 나 같아 버리려 싱크대에 가져갔는데 물에 슬슬 닦으니 먹을만했다. 엄청 다디달았다. 겉껍질은 더 두껍게 보호막을 이룬듯한데, 감 옆구리는 터져 물이 줄줄 새면서도 속은 알차게 익어있었다. 겉모습은 늙었어도 속은 더 알찼다. 단맛에 잠시나마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싱크대에 기대 오물오물 먹으며 씨를 뱉으며 생각했다. 이 주방에서 요리해서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났다. 남편이 떠난 이후로 집에서 단 한 번도 요리를 한 적이 없었다. 썩어버린 반찬들, 썩어버린 과일들, 썩은 우유, 썩은 빵과 날짜 지난 모든 식재료는 며칠 전 쉬는 날 대청소를 했다. 냉장고도 텅 비어있고 김치조차도 없었다. 김치 냉장고는 비워 전원을 꺼뒀고, 김치는 당근마켓에 나눔으로 해결했다. 적어도 집에선 김치 따윈 이젠 없어도 됐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가게에서 해결했다. 순댓국 먹고 늦게까지 일하는 날은 저녁도 순댓국을 먹었다. 이모들이 나보고 질리지도 않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질리지 않았다. 그냥 배만 채우면 됐다. 식욕이 없었다. 이모들은 싱싱한 부추가 들어온 날엔 부침개에 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주었고 배추겉절이 담고 남은 우거지용 배추로 배추 부침개도 해줬다. 싱싱한 무가 들어온 날엔 무생채를 만들어 양푼에 비벼 야무지게 비벼 먹었다. 김치가 팍 싹 익은 날엔 비빔국수도 눈물 나게 매콤하게 비벼주기도 했다. 이모들 손맛이 좋아서 뭐 밖에서 사 먹을 생각은 못 했다. 그냥 그거면 됐다. 하루 쉬는 주말엔 컵라면 하나면 됐고, 술도 재미없었다. 그런데. 어떤 날은 혼자 있을 때 소파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소파를 만지면 남편이 생각나고 남편이 생각나면 줄줄이 생각나는 영상처럼 그 여자가, 남편의 아이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아 그 여자의 SNS를 뒤지기 시작하면 밤이 새도록 끝낼 줄 몰랐다. 유난히 소파만 보면 자꾸 몸집이 큰 남편이 생각났다. 이젠 내 남편도 아닌데, 그냥 내 남편이었고 지금은 아닌 사람이 생각났다. 시골에 혼자 계신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 품에 안기면 따뜻할까 상상했다. 보고 싶다. 마음으로 생각했다. 저번에 사다 놓은 아빠 잠바를 넣어 둔 하얀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