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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휘 Jan 01. 2025

복돼지 순댓국 4

2025. 1. 1. 설날과 고드름

2025. 1. 1. 설날과 고드름

설날 1월 1일 유난히도 날씨가 반짝이고 눈이 소복이 쌓인 담장에 눈이 녹아들며 반짝임을 더했다. 처마 마루에 달린 고드름은 거두면 안 되었다. 손주들이 가지고 놀 재밌는 장난감이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고드름을 가지고 놀까? 걷어치울까 싶다가도 그냥 놔두기로 했다. 또 재밌게 놀던 애기 때의 손주들을 생각하며 고드름을 바라봤다. 겨울 햇살에 비춰 투명함을 담은 반짝이는 고드름 끝에 물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저 고드름의 물방울이 두꺼워지고 아래가 뭉텅해져서 우리 손주들이 안 다치게 놀만큼 그렇게 만들어지길 바라봤다. 내가 바라본 만큼 고드름은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며 똑똑 물방울을 떨어트리고 녹아 흘렀다. 내가 고드름을 바라보며 고마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왜 자연은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대변해 주는데, 인간이라는 것은 고마운 걸 고마운 것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하며 한참을 바라봤다. 손주들은 입시 준비로 못 내려오고 아들과 며느리만 잠시 들렀다. 금방 친정으로 갔다. 고드름은 햇살에 투명한 물방울을 똑. 똑. 똑. 떨어트리는 걸 가만히 구경했다.     

저 멀리서 승용차 소리가 들려왔다. 뒤 돌아 문밖을 보니 딸의 차였다.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걸어갔다. 뛰지 않고 점잖게 걸어갔다.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이 그렇게 걸어갔다. 빨리 걸어가면 딸내미를 안고 눈물이 날 것 같아 일단 손을 꽉 쥐어 엄지손톱으로 검지 손톱을 눌렀다. 피가 날 정도로 세계 눌렀더니 안정이 되었다. 눈물이 쏙 들어갈 만큼 심호흡을 한 후에 무던하게 행동했다. 삐걱거리는 파랑 철문을 열고 나가니 예쁜 나의 딸이 왔다. 예쁘게도 차려입고 왔다. 얼굴도 곱다, 머릿결도 곱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 엄마를 쏙 빼닮아 그런지 하얗고 빛이 났다. 얼굴에 낯빛도 밝았다. 내 눈엔 그랬다. 손에 든 소고기와 선물이라고 들고 온 카키색 잠바를 내밀었다. 거위 털이 들어가 엄청 따뜻한 거니 꼭 입으라고 했다. 오징어순대와 모둠순대, 순댓국을 5번 먹을 분량으로 포장을 해 왔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요즘 순댓국집에서 일을 배운다 했다. 순댓국집에서 서빙을 한다더니, 돼지 삶는 법도 배우고 소뼈를 우려 국물 내는 법도 배운단다. 저 가녀린 몸으로 저 팔목으로 순대국밥을 나르고 상을 닦고 소주병을 치우는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다. 상상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왔으면 됐다. 그냥 내 옆에 있으면 됐다. 안심되었다. 딸내미는 향기 좋은 로션을 바른 듯 풍향 같은 은은한 향기가 났다. 순댓국집에서 일하는 '아!'라고 말 안 하면 그냥 봐도 의사 사모님 같았다. 내 눈엔 귀하고 귀한 나의 아이였다. 3일 동안 집에서 쉰다더니 순댓국집에서 일하느라 일할 사람이 없어 오기를 망설였다 했다. 이모들이 앞다투어 출근한다고 해서 왔다 했다. 전화 목소리로는 그렇게 퉁명스럽더니 또 집에 오니 반가운가 보다. 아들 내외가 금방 떠난 뒤라 헛헛하던 참에 내 진짜 손님이 온 것 같았다. 방에 불을 더 살피고 아궁이에 나무를 더 넣었다. 딸은 따뜻한 이불 깔린 방바닥을 좋아했다. 추우니 얼른 들어가 있으라 하고 밥 먹었냐 물으니 아직 안 먹었다 했다. 딸내미는 오랜만에 와서는 어렸을 때처럼 어리광 부리듯 배고프다 했다. 딸내미가 손을 잡는데 손이 왜 이리 차가운지 속상해 물었더니, 4시간이면 올 거리가 막혀서 오느라 8시간이나 걸렸다고 했다. 출발하던 길에 휴게소에서 먹은 어묵우동 덕에 졸려서 창문을 열고 오느라 손이 차다며 춥고 피곤하다고 했다. 나는 얼른 들어가 있으라 했다. 운전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나는 <금방 따뜻해지니 방에 들어가 이불 덮고 누워 있어>라 했다. 패둔 나무 장작을 한껏 넣었다. 밥 차리면 아빠가 깨워줄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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