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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휘 Jan 03. 2025

복돼지 순댓국 6

2028.1.1. 막내딸을 낳길 잘했다.


오늘 내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딸이 온 걸 보니 명절인가 싶다. 얼마나 흘렀을까. 셈이 되지는 않는데 딸은 이제 중년의 느낌이 제법 났다. 어린 티는 벗고 중년의 색과 중년의 느낌이지만 내 눈엔 예쁨이었다. 국밥집에서 잘 먹고 다니는지 제법 퉁퉁하게 살도 쪘다. 그렇게 고집스럽고 욕심이 많다가도 나한테는 한없이 어리광부리던 나의 막내딸은 오늘도 귀엽다. 뭘 그리 사 왔는지 양손 가득 가져왔는데 힘이 많이 세졌나 보다. 저걸 한 번에 다 들고 들어온다니 대단하다. 트렁크 닫는 소리 더 쾅! 아주 우렁차다. 맘에 든다. 질질 짜고 우는 모습을 보느니 저렇게 씩씩하게 대장부처럼 쿵쿵 걷는 편이 나로선 훨씬 보기 좋다. 오자마자 내가 손질해 놓은 장작을 땐다, 날이 꽤 추운데 우리 딸 추울까 걱정이다. 바람이 우리 집 앞터를 비켜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갑자기 눈이 많이 와서 눈과 낙엽이 뒤섞여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이 되어 남 보여주기 부끄러운데 나의 막내딸이 단도리 해준다. 마당을 쓰는데 잘 안 쓸리는지 욕도 한다. 저 귀티 나는 입에서 저게 무슨 소리람!! 깜짝 놀랐다. 어디서 배워온 욕인지 아주 욕도 찰지게 한다. 욕을 하면서 마당도 잘 쓴다. 고드름 정리도 해주고 마루도 닦아준다. 오랜만에 신문지에 불붙여서 나무에 불 때는 건 어렸을 때 시켜본 적이 없는데 본건 있어서 알아서 척척하다. 야무진 내 딸. 눈발에 젖었다 녹았다 말랐다를 반복한 젖은 장작을 가마솥 주위에 올려 말린다. 기특하다. 똑똑하다 우리 딸. 저렇게 장작을 말리는 걸 보니 내심 기대가 된다. 우리 딸이 여기 오래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고…. 나의 욕심이 너무 크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붙잡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늘 와서 본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못할망정. 오래오래 여기 있으라니 욕심이 과하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내 딸, 어루만지고 싶은데 바라만 봐도 좋다. 내가 만지면 추워질까 봐 만질 수가 없다. 따뜻한 봄날이면 한껏 안아주고 싶은데 오늘같이 추운 날 내가 그러면 내 딸이 너무 추워진다. 참아야지….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은 나의 딸. 딸이 마당을 정리하더니, 이번엔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줄 참인가 보다. 좋아하는 전도 나물도 고기반찬도 만들어준다. 이게 얼마 만에 밥상인가. 하, 배고프다. 국도 끓이고 생선도 굽는다. 추운 날이 되면 내 제삿날인가 싶은데, 그게 언제 오나 배가 고픈데…. 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아니, 오늘은 떡국도 끓이는 걸 보니, 설날인지 싶다. 딸내미가 상을 다 차렸는데 아들은 오지를 않는다. 저번 제사 땐 며느리 없이 애들만 데리고 왔는데 이번엔 안 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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