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휘 Jan 04. 2025

복돼지 순댓국 (마지막 이야기)

2028년 3월 펄펄 끓는 가마솥

순댓국집에서 일한 지 5년 되는 날인 어제, 나는 일을 그만뒀다. 순댓국집 거래처 사장님께 미리 부탁드려 받은 소뼈를 받아 시골집으로 왔다. 찜질방을 들렀다 올까 하다가 시골집으로 바로 왔다. 아궁이에 불을 넣어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찜질방 황토색 옷이 진한 갈색이 될 때처럼 뜨끈하게 지지고 싶었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파란색 잉크를 뿌린 듯 새파랗고 동그란 솜사탕을 얹어 놓은 듯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했다. 바람은 차갑기도 했고, 따뜻하기도 했다. 차가운 바람은 고요한 앞산에서 부는 바람이오, 햇살 받은 쪽에서 부는 푸근한 바람은 아빠가 내 추울까 안아주는 따스운 온기 같았다. 군데군데 눈 녹은 바닥엔 야들한 쑥과 이름 모를 약초와 잡초가 뒤섞여 올라와 있었다. 마당에 듬직하게 버티는 감나무 둘레는 차갑고 단단하고 고동색 옷을 두껍게 두르고 있었다. 지난번 왔을 때 한참 쓸고 간 마당에 내가 왔다 간 살짝의 흔적은 있었지만, 여지없이 아무도 살지 않음을 대변하듯 조용하고 서글펐다. 방금이라도 저기 안방에서 나올 그것만 같은 아빠의 기척은 어디서도 살필 수가 없었다. 이제 아빠가 이 세상에 없는 걸 인정할 때도 됐는데. 나는 자꾸 기대한다. 아빠가 문밖으로 나와 “막내 왔구나.”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밥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면서 봐 온 장바구니에서 재료를 꺼내면서 생각했다. 소고기 우둔살로 불고기를 하려고 불고기 거리와 갈치를 사 왔다. 생선가게 아줌마는 낚싯배에서 막 가져온 갈치라며 갈치 입에 길게 낚싯줄 걸린 것을 마치 자기 입에 낚싯줄이 걸린 양 자랑하듯 갈치가 물 좋으니 사라고 재촉했다. 정말 은빛이 반짝이는 게 오색 빛깔 무지개색을 뽐냈다. 오른쪽으로 보면 분홍보라 왼쪽으로 보면 파랑 초록 갈치는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무시무시한 뾰족한 이빨은 <그동안 난 맛있는 생선을 많이도 잡아 뜯었으니 내 육질은 그대에게 영양과 힘의 원천이 될 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은빛 갈치를 4만 원이나 주고 샀다. 아빠 밥상에 꼭 올리고 싶은 그런 생선이었다. 생전 좋아했던 불고기를 볶고 갈치구이를 상에 올렸으니, “어서 들어오세요. 식사하세요.” 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와 마주 앉아 같이 밥 먹고 싶었다.      

아궁이가 여간 불편해도 우리 집의 묘미는 이 아궁이였다. 남은 장작이 별로 없어서 밥 먹고 나무를 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우내 거칠게 떨어져 쓸모없어진 나뭇가지만 주워서 모아도 불을 피울 땔감으로는 보탬이 될 것이다. 지난번 왔을 때 아궁이 위에 말려둔 나무들은 바싹 말라 땔감으로는 훌륭했다. 나는 봄바람의 살랑거림에도 으슬으슬하게 추위를 느꼈다. 이것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느끼는 서운함일까. 차가운 집에 훈훈한 공기를 불어주고 싶었다. 아궁이에 마른 장작을 넣고 신문지를 말아 불을 붙인 뒤 불을 지폈다. 지난 설날에 젖은 장작에 불이 안 붙어 고생한지라 아궁이에 올려 두고 간 마른 장작이 잘 타는 모습만 봐도 나 자신을 칭찬했다. 이제 장작은 다음 올 때 피울 만큼은 아궁이에 보관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끊으라고 했던 담배를 피우던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보고 싶다. 꼭 아빠가 옆에 있는 것처럼 따뜻했다. 유난히 추웠던 설날의 추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에는 아궁이가 나의 편이 되어 불과 함께 뜨거움이 얼굴을 강타했다. 의자를 뒤로 주춤주춤 옮겨 앉으니 이제야 녹녹히 따뜻했다. 음, 나무 짚불의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다. 그 순수한 자연의 냄새 중의 하나인 나무 타는 냄새는 뭉근하게 편안하게 해 주었다. 구수하고 향기로웠다. 특히 전나무까지 타는 냄새는 조금 더 좋았다. 타들어 가는 나무속에 내 마음을 할퀴고 간 메마른 세월을 집어넣었다. 그 세월을 이제 연기가 되어 흩었다. 훌훌 털고 일어나 가마솥에 물을 올리고 거래처에서 받아온 소뼈를 넣어 육수를 끓였다. 방에 들어가 아버지 유골함을 들고 뒷 산으로 갔다. 삽으로 언 땅을 파는데 땀방울이 송글하게 맺혔다. 나는 깊숙이 땅을 파고 아버지 유골함을 넣고 흙을 덮었다. 나는 햇살이 비치는 양지바른 곳에 아버지를 묻어 드리고 절을 하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하늘에서 나 잘하는지 꼭 지켜봐 줘, 이제 집은 내가 잘 지킬게.>하고 말하며 일어나 다시 땅을 밟고 밟으며 아빠를 생각했다. 왠지 아빠가 뒷 산에서 나를 매일 지켜봐 줄 것 같은 생각이 나니 힘이 났다.     

아버지가 있는 시골집, 눈물과 함께 배운 이모들에게 전수받은 손맛을 담아 순댓국 장사를 시작한다.

5년 동안 열심히 배운 순댓국, 힘든 시기 눈물과 함께 배운 순댓국, 3종 수제 순대와 보글보글 뚝배기 순댓국, 오징어순대가 주메뉴다. 가게 이름은 시골집 순댓국이 어떨까? 가마솥 순댓국? 우리 집 순댓국? 아님, 이모들의 손맛을 배운 복돼지 순댓국? 간판을 다는 날까지 아마 계속 고민이 될 것 같은데, 이름을 짓는 것도 신이 났다.  잘 배워왔으니 아버지 온기가 있는 이곳에서 생전에 사람 좋아했던 아버지가 내 옆에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한다. 파이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