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냐시오 야학에서 만난 학생들
수십 명의 학생들로 가득 차 있는 교실은 어느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학생이라는 단어와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동일시 여겼던 나의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성 이냐시오 야학 강의실은 가장 학생다운 모습의 어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실을 한가득 메운 어머니들의 눈빛은
학생이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교단 위에 처음 올라선 나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눈빛
문방구로 가득 차있는 책가방 속에서 책과 노트를 주섬주섬 꺼내는 바쁜 손놀림
날카롭게 깎은 연필을 손에 꽉 쥔 체 칠판에 빼곡하게 적힌 글씨를 하나하나 받아 적는 열심은
학생이란 단어가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교육이라는 철학에서 시작한 일도
교육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확고한 교육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작은 재능을 나누겠다는 숭고한 봉사정신이 바탕이 된 일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미래에 강의를 하고 싶은 나의 꿈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소외계층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이 나의 이미지를 잘 포장해줄 것만 같아서
그런 지극히 개인적 욕심과 이익을 앞세워 발을 디디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는 순수한 눈빛은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고
학업에 대한 열정적인 갈망은 나의 이기적인 생각을 먼지처럼 흩어버렸으며
어머니들의 소녀 같은 웃음은 내가 서있는 자리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했다.
졸업장은 어머니들의 지나간 날에 대한 위로이자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이었다.
어머니들에게 한 장의 졸업장은 학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놓아버렸던 배움의 기회
나보다 가족의 미래가 우선이었기에 포기해야 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
배움의 공간보다 생계의 터전이 먼저였던 그분들에게
이제라도 지나간 날들을 되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잃어버린 청춘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기회였다.
한마디 한마디 간절한 사연과 눈물 적시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꼭 합격해서 졸업장을 가족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어 몰래 학교에 나오고 있다는 학생
학교 정문을 눈물로 등지고 삶의 터전으로 향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입학했다는 학생
못 배운 한이 서린 서러운 눈물을 지금이라도 닦아내고 싶어 다시 연필을 든 학생
자식들에게 당당한 엄마, 자랑스러운 시어머니가 되고 싶어 공부를 하게 됐다는 학생
어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간절함이 묻어났고
교실은 학창 시절로 돌아간 어머니들의 풋풋한 마음과 설렘으로 가득 채워졌으며
어머니들의 학업을 향한 떨리는 마음과 순수한 열정은 고스란히 교단 위로 전해졌다.
어머니들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들이자
가장 훌륭한 학생이라 불려지기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몇 번들 들어도 자꾸 잊어버려 묻고 또 물어야 하지만
작은 단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아 하나씩 되짚어가며 설명해야 하는 더딘 수업이었지만
70분간의 수업은 지금까지의 어떤 수업보다 뜨거웠으며 가장 학생다운 모습이었다.
작은 이야기에도 까르르 웃으며 대답하는 어머니들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들이자 가장 훌륭한 학생이라 불려지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쉽게 올랐던 교단은 그리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니고 내려와야 했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청춘에 작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
숨어버리고만 싶었던 학업이라는 커 보이는 산을 다시 오를 수 있는 용가 되어준다 것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오늘도 교단에 올라 학생과 함께하는 새로운 이유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