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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May 23. 2018

숨비소리

제주도 푸른 바다,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 그 바다가
삶의 터전이고, 삶의 이유이고, 하늘이 준 소명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도 해녀들에게 바다는 그들이 태어난 곳이자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머무는 삶 그 자체이다.


나에게 바다가 허락한 숨의 길이,
그 숨의 길이가 다하는 순간 누구나 바다 위로 올라와야 한다.


해녀들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숨의 길이가 있다. 그 숨이 허락된 깊이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해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숨의 길이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노력한다고 해서, 익숙해진다고 해서, 시간이 흐른다 해서 절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하늘이 정해준, 바다가 허락한 숨의 길이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바다가 허락한 숨의 길이, 하늘이 선물한 숨의 길이가 다하는 순간 누구나 바다 위로 올라와야 한다.


숨의 길이를 잊은 채 눈 앞에 작은 욕심에 망설이는 순간
물숨이 찾아와 나의 생명을 앗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숨의 길이가 다했을 때 눈 앞에 스쳐 지나가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조금만 더 숨을 참으면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에 망설이는 순간
물숨을 쉬게 되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조금의 미련도 남기지 말고 올라와야 한다.
그저 내 것이 아니었음을, 바다가 내게 허락한 것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이고

나의 숨의 길이가 다하기 전에 물밖로 올라와야 한다.


자신의 다한 숨을 다시 고르기 위해 내뱉는 소리
숨비소리는 다시 숨을 참아내기 위해 나를 회복시키는 소리이다.


바다 위로 올라온 해녀들은 참아왔던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숨을 고른다.
숨비소리, 해녀들이 숨을 고르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내뱉는 소리이다.


누가 알려준 방법도 아닌 오직 자신이 몸으로 체득한 자신만의 숨비소리를 내며 숨을 고른다.

얼마나 빨리 숨을 고르는지, 호흡을 회복하는지에 따라 다시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누구도 시작점이 공평하다 말한 적 없다.
그저 내게 허락된 숨의 길이 그만큼만 넉넉히 살아낼 뿐이다.


우리의 삶도 해녀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 누구도 삶의 시작점이 공평하다 이야기하는 이는 없다.

그저 자신이 이번 삶에 허락된 숨의 길이 그만큼만 넉넉히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더 긴 숨을 쉬어내는 누군가를 부러워할 필요도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누군가를 보며 힘들어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삶의 주어진 그 숨의 길이 그대로 그렇게 살아낼 뿐이다.


내게 주어진 숨, 그 이상의 것에 욕심내는 순간
물숨이 찾아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숨의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만의 숨비소리를 터득하는 것이다.


하늘이 허락한 숨의 길이, 이미 정해진 삶의 한계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숨비소리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긴 숨의 길이를 가진이도 언젠가 그 숨의 길이가 다했을 때
물밖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나 빠르게 숨을 회복할 수 있는가
내 삶의 모든 힘이 다했을 때 얼마나 빨리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정해진 답도, 누군가 가르쳐주는 이도 없다.


나만의 숨비소리, 나만의 일어서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깊은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들어갈 수 있다.


힘겨운 삶을 버텨내다 물 밖으로 잠시 고개를 내민 당신에게
자신만의 숨비소리를 낼 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 깊은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허락되기를


깊은 바닷속에서 숨이 차올라 잠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당신에게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다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 당신에게


자신만의 숨비소리를 낼 수 있기를, 그렇게 다시 고른 숨을 쉴 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 용기 내어 깊은 바다로 들어가 나의 숨의 길이가 허락되는 순간까지 넉넉히 살아내기를


혹여 누군가 홀로 숨을 고르기에 버거워하는 이가 있다면

다른 이의 숨비소리가 들려지기를, 그 소리가 힘이 되어 지친 몸을 일으키고 다시 숨 쉴 수 있기를

깊은 바닷속 차오르는 숨을 견디고 있는 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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