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연필을 든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 세상을 떠난 이에게 향하는 편지는 써 본 적이 없어 너무 어렵다. 누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들, 수도 없이 많겠지만 흐릿한 옛 기억 속에서도 가장 분명한 것만 말해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싸운 날. 아마 누나가 6학년 쯤, 내가 5학년 쯤 아니었을까. 부모님은 없었고 우리 둘만 있는 집에서 우리는 마치 정말 서로를 죽일 듯이 치고 박았다. 마지막 절정의 순간, 쓰러진 내 위로 누나는, 엄마가 지점토로 만든 항아리를 들었고 내 머리로 던질 듯 겨눴다. 나는 순간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던질 것 같았으니까. 정말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운 게 맞았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양팔을 그쪽으로 들어 막으려 했고 누나는 씩씩거리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적어도 몇 분은 흐른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는 몇 십 분 같았겠지. 그러던 차에 누나 친구가 놀러왔다. 그때서야 몇 분간의 그 초긴장 상태가 끝이 났다. 누나는 항아리를 놓았고 나는 집 밖으로 나갔다. 그때 온 사람이 누나의 친구였는지 내 친구였는지 기억이 명확하진 않다. 모르겠어. 그치만 그 사람에게 너무 고마웠다.
누나에게 처음 쓰는 편지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이런 것이라서 미안해. 그렇지만 그날의 장면은 마치 3인칭으로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생생하다. 누나도 그날의 일을 부모님께 말한 적 없겠지. 말했으면 혼이 났을 테니까. 나도 말한 적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첫 비밀일 수도 있겠네. 또 편지쓸게.
- 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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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선생님이 이번주에 누나에게 편지를 써 보라고 하여 연필을 들어보았다. 편지지가 한 장뿐이라 길게 쓰지 못하였다. 이 숙제와는 별도로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조금씩이라도 써서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 혼자서 하는 화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