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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Jul 31. 2022

혼자 하는 화해 8

가정 (최지은_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누어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죽은 이"는 그의 엄마에게, 아빠에게, 남편에게, 딸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모두 다른 사람이라, 모두 모여야만 한 사람이 완성되지. 싹이 난 감자처럼, 그 사람을 계속 키우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해, 팔팔 끓여 나눠 먹지. 독이 남은 감자를 각자의 몸 속으로 꿀꺽 삼킨다. 그런 저녁식사를 하고 난 밤마다 "죽은 이"는 제 몸을 나누어 각자의 꿈에 나타난다. 


엄마에겐 배꼽을, 아빠에겐 이마를, 남편에겐 겨드랑이를, 딸에겐 가슴을, 동생에겐 엉덩이를.


싹이 난 감자 같은 이 시를 오늘 수업에서 학생들과 나눠 먹었지. 슬픈 시를 나누어 가진 후에 우린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된 나는 속옷만 남긴 채 헐벗고 선풍기 바람을 쐰다. 연두색 속옷이 마치 감자싹 같다. 독이 든 감자 같은 시를 읽었더니, 삼켰더니 내 몸에도 독이 생겼나. 그럴 수 없지, 그럴 수 없다.

내 몸에 싹이 생길 리는 않으리라. 침대 앞에서 생각한다. 

오늘 밤 이 침대에 당신만 찾아오지 않으면, 싹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나.

 

수업에서 이 시에 대해 설명을 하다 울 뻔했는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 모를 수 있다. 모를 수 있지. 우린 이 시를 나눠 가졌을 뿐 누군가의 죽음을 나눠 가진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이 글을 보게 될 수도 있을테니, 내가 울 뻔했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 선생님이란 사람이 수업하다가 울 수도 있겠다....라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울지 않았다. 나는 싹을 참을 것이니까. 싹 틔우지 않을 것이니까. 독이 생기지 않을 것이니까...

나, 독이 생기면 좀 나눠 가져 줄래? 솔라닌 같은 거 이름만 예쁘지 나는 필요없다...필요없어... 누군가 열오르게, 누군가 배탈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오래 살 것이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 

없으면... 말고.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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