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nis Jun 20. 2020

쌀밥에 김치와 구운 김, 이 밥상

건강과 맛, 엄마랑 아빠와 나

70대 초반과 60대 중반인 아빠와 엄마의 밥상은 동의보감 수준으로 영양에 집중돼있다. 10여 년 전 고혈압 판정을 받으신 이후, 극소량의 염분만 가미해, 솔직히, 못 먹겠다. 김치는 노랗고 투명하고, 된장찌개는 1km 멀리서 끓인 듯 슴슴하다. 평생 남도식 반상을 추구하며 살아온, 딱 40살이 된 딸 입장에서는, 아파야 겨우 먹어낼 밥상이랄까.


게다 밥상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오가는 주제는 영양가다. "여보, 우리 오늘 단백질을 안 먹었어, " "비타민 때문에 나물을 좀 더 먹어야지." "생선도 붉은 살은 기름지더라고."

두 분에게 나는 마흔 먹어서도 달고 기름지고 매운 음식들로 매끼를 채워가는 불량하고 이상한 사람이다.

"아이고 짜!" 내가 스파게티라도 한 날은 이구동성으로 한입 뜨고는 면을 더 넣자고 하신다. 탄수화물 과다라는 사실에 결국에는 밥을 드시겠다고 하는 날도 많다. "너 그렇게 먹다가는 죽는다, "고 매일 같이 양념 강한 내 밥상을 타박하시고, 나도 "어차피 체질이라 건강하지 못할걸. 건강하지 않으면 오래 살기도 힘들어, "라며 무시하기 일쑤.



그런 우리도 한 때는 다 같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있다.

잘 지어 윤기 흐르는 흰쌀밥에 계란과 간장, 참기름을  비벼낸 장밥 위에 멸치액젓과 태양초 넣어 매콤하고 칼칼하게 무친 김치를 얹고, 소금과 참기름으로 잘 구워낸 김을 싸 먹는 것. 뜨거운 밥에 계란의 비릿하고 고소한 맛, 혀가 아릴 정도로 알싸했던 김치가 입에서 어우러져 끝없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 뜨거! 아 매워! 그래도 엄마 한 공기만 더!"라고 엄마에게 밥그릇을 주면, "얘네 입맛은 아주 그냥 어른이야!"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49년생으로 매일같이 어려운 시절을 되뇌던 아빠는, "나 어릴 땐 이 정도만 먹어도 호화로웠지!"라고 말하며 넘실거리는 눈웃음을 짓곤 했다.


무려 국민학생의 기억. 고기반찬 없이도 밥 수 그릇을 뚝딱하던 그 밥상에 대한 기억이었을까, 아직도 나에게 최고의 메뉴는 약간 꼬들 하지만 윤기 넘치는 흰쌀밥에 잘 익은 김치와 탄력 있게 구워낸 김을 감싸 먹는 것이다.



부모님과 한 식탁에서도 다른 음식을 해 먹은지 수년. 서로가 서로의 식탁을 힐난하면서도 물들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걸까. 혀끝이 아릴 정도로 매운 김치를 찾아대던 나도, 어느덧 엽기떡볶이 안 매운맛만 먹어도 빨갛게 익을 정도로 자극적인 맛을 못 먹는 사람이 됐다. 가끔은 슴슴한 나물을 먹으며 "미나리 향이 목 끝까지 남네!"라는 칭찬도 하는.



엄마는 종종 내 밥상을 탐내기도 한다. 나의 또 다른 별미,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에 차가운 버터를 5mm 두께로 썰어 얹은 것을 달라고 하신다. 탄수화물과 지방의 완벽한 조합이라, 건강 걱정하는 엄마에게 안 어울려 버터를 아주 얇게 긁어 올렸다. "두껍게 해 줘야지!" 엄마는 토스트를 다시 내 앞에 두며 "오리지널" 맛으로 부탁하신다. 빵을 원래 좋아하는 아빠는 이 순간만큼은 탄수화물 걱정 없이 열심히 토스터기에 빵을 넣는다.



각자 배부르게 먹고 나면 스물스물 올라오는, 아주 익숙한 그리움이 있다.

그런 날은 밥솥의 밥을 달달 긁어모아 식히고, 들기름에 바싹 김을 구운다. 그리고는 이제는 조금 심심한, 연주황색 김치를 꺼내와 각자 밥 한 그릇씩 비운다. 콧속에서 액젓의 비릿한 맛과 마늘, 생강, 고추와 참기름 냄새가 돌고 나면 배를 두드리며 말한다. "뭔지 몰라도 진짜 호화롭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