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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is Aug 04. 2020

나의 면접일기 (1. 한 중견기업 편)

그는 나보고 사내에서 결혼하면 좋을 것이라며, 한 직원을 찝어(?)줬다

별점: 3


2005년. 

한 방송사 면접에 똑 떨어지고(이는 추후에 소개하기로 한다) 이후 약간의 의욕상실 기간을 겪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인크루트에 올렸던 이력서를 보고 전화했다면서 헤드헌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의 영어능력에 주목하며 좋은 자리가 있다고 소개했다. 한 중견기업 회장님이 글로벌 스포츠 연맹의 회장이시기도 한데, 바로 이 업무에 있어 수행비서를 찾고 있다는 것. 연맹 업무차 여기저기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게 될 것이라며 영어를 하고, 또 당시에 내가 의전 관련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경력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 상품을 사용한 적도 있고, 글로벌 연맹 총재 수행이라니 PD 직 떨어진 것 때문에 마음도 어지러운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이력서를 내자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본사를 방문하게 됐다. 아직 많이 어렸던 - 25살-의 나는 빌딩이 크다는 생각정도 하고 들었갔다. 

실무진의 면접을 거쳤는데, 크게 기억이 남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무난하지 않았나 싶다. 

헤드헌터는 매우 만족했다. 이 여성분은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했었는데, 크게 신경쓰이는 일이 없었던 것으로 봐서는 크게 좋은 것이 없었던게 아닌가 싶다. 


이후 그 기업의 부회장을 만나게 됐다. 헤드헌터가 직접 데려가, 심지어 면접장 앞까지 따라왔다. 

꽤 큰 집무실에서 거의 일대일로 면접을 치뤘다. 

부회장은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며, 갑자기 그 면접자리에 동석했던 한 남자를 가리켰다. "입사해서 이 사람이랑 결혼해서 같이 다니면 되겠네." 그는 캐나다 국적자라는 소개와 함께.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다른 건 모르겠고 꽤 큰 눈에 서린 당혹감. 그러나 처음은 아니었던지 frustration이 겹칠된 얼굴. 

처음에는 그(나의 신랑감 지목대상)가 그다지 잘 생기지 않았군, 재미없는 농담은 하네, 정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결혼해서 같이 회장님 모시고 해외나가면 되겠다는 말을 하니 슬슬 짜증이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대충 대답하고 나왔다. 


이 때 결정적인 사달이 났다. 빌딩을 나서는데 헤드헌터가 나에게 말했다. "인사과에서 얼마나 줘야되냐, 3500? 4000?이라고 하길래 내가 신입인데 많이 줄 거 없이 3000만 달라고 했어요."


무슨 말? 왜 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3000이라고 했지? 그리고 왜 그걸 나에게 통보하지? 원래 취업이라는게 이렇게 당사자는 전혀 말한마디 하지 않은 채 연봉과 결혼이 결정되는 일인가? 화가 치밀어 오르지 시작했다. 집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저녁 헤드헌터가 다시 전화했다. 부회장이 마음에 든다고 했으니, 이제 회장님 만나러 가면 된다고. 

안가겠다고 했다. 헤드헌터는 이리 좋은 자리에 왜?라고 하길래 나는 아직 언론사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헤드헌터는 갑자기 이렇게 안가겠다고 하면 자기가 뭐가 되냐고 했다. 나는 모르겠고, 3500, 4000 준다는데 3000 받고 다닐 다른 사람 알아보라고 했다. 


몇년 후, 그 기업의 그 회장님은 파견근로자(정확히 말하면 개인사업자들에게 도급을 주는 것)들의 파업으로 크게 사회적 물의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그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별 볼일 없다는 것. 씁쓸했다. 더불어 그 똑똑하다던 그 남자분은 그래서 누구와 짝지워졌나, 궁금했다. 


이후 성희롱이라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그날 내가 왜 그리 찝찝하고 짜증나고 모멸감을 느꼈는지 알게 됐다. 부회장이 한 것은 명확한 위계질서에 따른 성희롱이었다는 것을. 농담을 가장한 희롱으로 자기 딴에는 유머러스한 future boss였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굴욕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그 자리를 그다지 탐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마 덜했던 것이지, 정말로 그 자리가 간절했던 사람이라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을 자리였다. 아니, 출근하고는 지속적으로 그랬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인터뷰는 빵점, 나의 대처는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안갔으니까!)


나에게 명백하게 신경질 내던 헤드헌터는 그 다음, 또는 다음다음 해에 나에게 전화했다. 외국계 회사 지사장 비서자리에 나를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취업했다, 그것도 내가 원하던 자리에, 라고 밝히며 거절했다. 그녀의 질문은 "정규직이에요?"였다. 나는 그렇노라, 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연락오지 않았다. 




P.S. 헤드헌터와 일을 하면서 조심해야될 점은, 많은 경우 그 분들이 후보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고용주가 될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 Fee도 거기서 나오고, 향후 더 많은 일자리가 그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0년도 넘는 시간이 흐른 후, 또다른 헤드헌터를 통해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그녀는 끊임없이 회사의 요구에 내가 맞출 것을 요구했다. 결국 회사 HR와 내가 직접 네고 해, 내 요구를 관철했다. 그때 헤드헌터는 나에게 "어떻게 그런 딜을 만들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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