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nis Aug 05. 2020

나의 면접일기 (2. 한 방송국 편)

그들은 내게 죽기 직전까지 교회를 다닐건지 물었다

별점: 1점(하나라도 준 이유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이라는, 나의 자존심 때문)


2005년 일이다. 


나의 원래 꿈은 방송국 PD였다. 

교양국 PD로 시사 프로그램, 고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매사에 트집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솔직히 즐기기도 하는) 내게는 상당히 잘맞는 직업일거라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고된 직업이긴 하지만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대학교 3학년 학교 오빠 몇명과 스터디를 짜서 공부하기도 했다(솔직히 그 끝이 어땠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데, 그 중 한명은 나중에 업계에서 만나서 나름 인사하고 지내기도 했다.)


정부부처에서 인턴을 하면서도 내꿈은 PD라고 밝히며 취업시험을 보러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부처 사무관 등은 시험을 보지 않고 정규직 전환을 꿈꿀 수 없는 직종이기 때문에 부처 관계자들도 꽤 관대하게 나를 봐주었고, 그래서 회사에서도 열심히 상식 공부를 하며 취업열을 불태웠다. 


9월부터 통상시작되는 공채시즌, 방송국 3사 시험을 봤고 두 군데에서 필기를 보게 됐다. 그리고 한 군데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라 너무 기뻤고, 설레 잠도 제대로 못잤던 것 같다. 


면접 당일, 세명의 심사위원이 나왔다. 

꽤 평이하게 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당시 내 종교였던 기독교를 걸고 넘어진 것. 

갑자기 안경을 고쳐쓴 한 위원이 나에게 말한다. 

(정확한 워딩은 아닐지 몰라도 이 얼개였다. 충격적이라 잊혀지지 않는다)


위원: 교회가 얼마나 중요해요?

나: 저에게는 교회라기보다는 신앙이 매우 중요합니다. 

위원: 일요일에 교회가는 건 얼마나 중요해요?
나: 일주일에 하루 신앙을 위해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과 신앙을 나누는 것은 제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위원: 이 일 하다보면 일요일에 교회 못가는 날도 많을텐데?

나: 교회를 가지 못하는 상황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 혼자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건 교회를 다니는 것보다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위원: 신앙은 그럼 꼭 다녀야되나? 만일 누가 교회 다니지 말라고 하면 뭐라고 할거에요?

나: 교회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도 용납 어렵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신앙을 지키면 되기 때문에 상관 없습니다. 

위원: 만일 이 일 때문에 어느 나라에 갔는데, 그 나라에는 교회가 없고 교회 다니는 사람 처벌하면 어떻게 할거에요?

나: 교회를 못가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성경 하나 가져가서 읽으면 됩니다. 

위원: 성경 못가져가게 하면 어떻게 할거에요? 

나: 성경을 가져갈 수 없으면 기도하면 됩니다. 

위원: 기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할거에요? 신앙 가지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할거에요?

나: 기도는 마음 속으로 하는 겁니다. 신앙을 가지는 것은 저의 개인적인 부분으로 지시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원: 신앙이 왜 그리 중요한데요?

나: (울컥) 그건 제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그 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면접 후 화장실에 들어가 눈화장이 지워질 때까지 울었다. 


난 면접전형에서 탈락했다. 


생각해보면

1. 그 당시 유행하던 압박 면접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극단까지 사람을 몰아 위기대처 능력을 보겠다는 것. 나는 PD일에 있어 신앙이 그리 중요할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위원들은 눈물을 보인 나를 보고 드디어 스크리닝 포인트에 도달했다고 좋아했을까. 지금은 압박면접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 잘됐다고 보인다.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는 OJT에서 다뤄줘야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2. 그러나 더 괘씸하고 이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신앙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법의 테두리에 전혀 머무르고 있지 않은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는 것. 지금은 이런 곳도 없겠지만, 있다 하더라도 인권위나 권익위를 통해 시정권고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니면 언론에 회사되면 큰 비난을 받고 회사망신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15년 전 방송국은 훨씬 권위적이었고 때로는 언론사 안에서 발생한 이슈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제대로 들여다봐지지 않는다. 그리고 난 그날 그 방에서 인격이 말살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교회다니지 말라고, 신앙을 갖지 말라고 했으면 나았을 것을. 굳이 내 입을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추측컨데, 그 방송국은 소위 이단 교인들을 다룬 프로그램을 방송한 후 교인들의 침입(?!)을 받고 기물이 파손되는 등 여러가지 피해를 입었기에 종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다. 더 조심스럽게 사람을 뽑고자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굉장히 드세 보였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후보자들에게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그 정도까지 몰아세우지는 말았어야 했다. 한동안 그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


부처에 돌아와서 면접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설명하자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 그 분들도 언론사 면접시험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더 그랬을 것이다. "완전 어렵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져갔다. 교회와는 더욱 멀어졌다. 


몇년 후 해당 방송국의 교양부문 PD 들이 프로그램 내용의 부정확성을 이유로 법적조치를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 처음으로 다시 내 마음이 풀어졌다. 고생하니 혼나봐라, 가 아니다. 그냥 그 사람들이 다시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야되는 말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그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내가 언론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를 상기하게 됐다. 그리고 방송국에 대한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압박면접은 아무리 봐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극단적인 감정적인 상황을 연출해서 그 사람의 단점과 장점을 파악하겠다는 것은 우리 회사는 이렇게 사람 미치게 만드는 곳이다, 고 광고하는 것 밖에 안된다. 

회사가 마냥 안식처는 아니더라도,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곳이 되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해야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면접일기 (1. 한 중견기업 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