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책 제목만 봐도 격하게 공감 가는 내용일 것 같아서 덥석 사놓고도, 또 한편으로는 나에겐 너무 뻔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았을 것 같아서 영 손길이 가지 않던 책이다. 요즘 통 책을 못 읽은 탓에 반성하며 구석에 쳐박아 놓았던 책들을 읽는 중인데, 빠르게 완독 가능할 것 같은 책 후보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예상대로 거의 내 예상과 다르지 않은 내용들로 가득했고, 금방 다 읽었다.
생각보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많고, 또 한편으로는 별로 없다. 막상 여행을 떠나보면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일상에서 내 주변에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내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면 반드시 듣게 되는 소리가 '또 혼자 가냐'다. 처음에는 "여자 혼자 유럽 여행을 하다니 용기 있다, 대단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결혼해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혼자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어서 부럽다"고 말하지만, 몇년째 혼자 여행하는 나를 봐온 사람들은 차츰 "또 혼자 가냐"고 묻기 시작한다. 그들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이해할 수 없음과 질투와 동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같이 여행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여행하는 거라고 단정 짓고 나를 자기 멋대로 동정하거나, 말로는 부럽다고 말하면서도 얼굴에는 '혼자 여행하면 되게 재미없을 텐데'라고 쓰여있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혼자 여행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자신도 혼자 여행하고 싶지만 막상 혼자 여행을 떠나면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이유는 사실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였다. 한두 푼 드는 게 아닌 해외 여행이 같이 간 사람과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 망쳐지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물론 나도 나와 마음 잘 맞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꽃청춘 보면서 나도 친한 친구들이랑 함께 여행하면 참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여행만큼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굳이 다른 사람과 맞출 필요 없이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현실적으로 친구들과 휴가 날짜 맞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단순하지만 막강한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여행스타일이 있다. 나는 혼자하는 여행이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더 좋은 사람도 있을 거고 여행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래서 나는 딱히 다른 이들에게 혼자 하는 여행을 권하지는 않는 편이다. 이 책이 아무리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고 이야기한다 해도 결코 혼자 떠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주변 상황 때문일 수도 있고, 성격 혹은 내면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은 '틀림'이 아닌 '다름'의 문제다. 그런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공감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나는 결혼을 한 후에도 휴가 때 남편과 각자 여행을 떠난 후 여행의 중반쯤에서 만나 한동안 함께 여행을 하고, 또 다시 헤어져 각자의 여행을 하다 집에서 만날 수 있기를 꿈꾼다. 너무 과한 꿈인 건 안다. 그래서 최소한 나에게 혼자 여행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만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결혼 후에도 혼자 여행하겠다고 하면 엄청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쏟아질 거다. 왜 그렇게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혹은 해서는 안 되는) 걸까.
혼자 하는 여행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처음 혼자 떠난 여행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했던 시기였고, 그 다음부터는 수시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회사를 때려쳐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여행도, 진짜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떠난 여행도 모두 혼자였다. 생각해보면 내게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는 혼자 떠난 여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혼자 하는 여행은 가장 큰 힐링의 시간이고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회사생활이 아무리 거지 같고 스트레스 받아도, 나에게는 늘 다음 여행계획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이건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쓰다 보니 뭐가 이렇게 길어졌나 싶지만, 아무튼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그렇다.
역시 이번 생은 틀렸어.
아래는 책에서 밑줄 친, 공감가는 문장들.
여행을 할 때 우리는 내 짐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 들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목적지를 대신 정해 달라고 하지도 않고 남이 계획한 대로 똑같이 따라하지도 않는다. 길에서 누군가 만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각자 가야 할 길로 돌아간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꾸 다른 사람에게 내 짐을 대신 지우려 하고 결정권을 미루고 남의 시선에 갇혀 자기 방식대로 살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내 의지와 용기를 회복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은 혼자 떠난 여행이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걷기도 하고 목적지가 바뀌기도 하지만 혼자서도 자신의 행복을 좇아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혼자 행복할 수 있어야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프랑스 출신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인류의 거의 모든 문제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오랫동안 단지 자신과 홀로 있지 못하기에 생겨난다"고 말했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엄청난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이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되고, 새로운 목표가 저절로 세워지며, 새로운 길을 걸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또한 삶의 여정을 꿋꿋하게 계속할 의지가 생기고 보다 건설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삶을 꿈꾸지 말고, 꿈을 살아 내자'라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고통받게 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그때 이 음식도 먹어 볼걸, 저 박물관도 가 볼걸, 그 뮤지컬도 봤어야 했는데 하는 것들이지 돈을 너무 많이 썼다가 아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그리고 스스로 그럴 가치가 있다면 몇 푼을 아끼기 위해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라. 언제나 자신을 가장 최우선에 두도록 하라. 내가 나를 잘 돌볼 때, 세상도 내가 잘 여행할 수 있도록 돌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