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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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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Nov 20. 2021

평온한 주말의 다섯

오랜만에 잡념 털기. 에라 모르겠다.

1. 오랜만에 평온한 주말을 맞이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동네 카페로 왔다. 카페에는 한 껏 차려입어서 누가 봐도 결혼식을 다녀온 사람과 동네 마실을 나온 것 마냥 후줄근하게 입은 사람이 한 데 섞여 근황을 나누고 있다. 오늘은 꼭 잡념들을 털고 가야지.


2. 출근길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국계 제약회사 영업 사원으로 일을 시작해서 전무까지 올랐고, 일흔이 넘어서 은퇴를 했다. 은퇴 후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우울증이 왔고, IMF 때 혹시 몰라서 따둔 택시 면허로 타던 외제차를 팔고 개인택시를 시작했다. 기사님은 40년의 시간을 한 회사에 투자하며 버텨냈고 넉넉한 퇴직금을 받았다. 택시로 번 돈은 매주 찾아오는 손주들 용돈이 되었다. 기사님에게 택시는 생업이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3. 기사님의 이야기를 30분 정도 들으며 생각했다. 무언가를 이뤄내고, 보상을 받은 사람들 중 어려움을 피하며 쉽게 간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얼마나 잘 버티는 사람인가? 솔직히 나는 회사 생활이 조금만 힘들어도 다른 방법을 찾으려 애쓰며 살았다.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각도와 태도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4. 나는 어떤 사람과 일하고 싶은가? 잘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다. 그러면 잘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해서 자신과 하고 있는 일이 동기화된 사람이다. 회사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으로 여기고 어떻게든 성장시키려는 사람 혹은 고객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여기고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사람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 회사에 와서 같이 일하게 된다면, 자기가 하는 일에 몰입해 본 경험이 있고, 어떻게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면 좋겠다. 한 번 들어갔다 왔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만, 또 즐거운지 알고 있고,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어느 정도로 큰지 알 테니까.


5. 나는 각자 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꿔주며 일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설계는 잘하지만, 비주얼은 부족한 디자이너에게 비주얼 역량을 요구하거나, 부족하다고 계속 푸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기획, 설계, UX, 개발에 대한 이해도에 비해 비주얼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그 동안 기획이나 UX 설계 쪽 일에 집중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쿼드의 유일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프로덕트 전반의 디자인을 책임지다 보니, 내가 맡은 프로덕트의 비주얼은 나 스스로도 늘 아쉬웠다.


아무리 디자인 시스템이 잘 잡혀있다고 하더라도 프로덕트에서 필요한 모든 비주얼을 커버할 수는 없다. 담당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어느 정도는 필요한 리소스는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시점에 내가 비주얼을 잘하기 위해 시간을 쏟는 게 맞을까? 체계적으로 시각 디자인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어떻게 글 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한테는 비주얼이 막막하다. 디자이너의 핵심 역량이라면 나는 디자이너를 그만하고 다른 직무로 갈아타야 할까?


에라 모르겠다. 사진은 2017년 코펜하겐 Glyptoteket 미술관에서  

+ 글을 쓴 후 조금 더 고민해봤는데, 시간을 쪼개서 비주얼 실력을 더 닦아보기로 했다. 해보고 안되면 그 때 다시 고민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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