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실력은 고통의 총합이라고 했는데.
1. 2월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기 전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과 간단한 소회를 남겼다. 글감이 꽤 쌓이고 있어서 적어도 한 달에 글 하나씩은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사이 봄도 오고, 청계산입구역으로 이사도 하고, 두 트라이브 디자인 챕터의 리드도 되고, 수영장도 열심히 다니고, 코로나도 걸리고, 재엽 교수님 강의도 살짝 도와드리면서 바삐 지냈다. 그렇게 정신 차려보니 4달이 지났다. 더 늦어지다가는 상반기에 하나도 못 쓸 것 같아서 허겁지겁 글을 적기 시작했다.
2. 리드가 된 이후 내 능력의 한계와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데, 해야 할 일은 예전보다 더 선명하다. 급한 마음에 내 시간과 노력을 회사에 더 쏟고 있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결국 목표는 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어서 비즈니스의 성장을 돕는 것이지만, 당장은 저 멀리 달보다는 손가락에 집중하게 된다.
3.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미를 넘어 지난한 시간을 거칠 수밖에 없다. 재능을 타고났거나, 충분한 경험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두 가지 모두 아직은 모자라기에 디자인을 하다 보면 고통의 순간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지금 회사에 다니면서 보는 눈만 높아져서, 손과 몸이 여러모로 고생이다. 적당히 타협하거나, 누군가에게 넘기면서 마무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보니 더더욱 그러하다. 누군가 실력은 고통의 총합이라고 했는데, 실력은 몰라도 고통은 확실히 받는 중이다.
4. 좋은 프로덕트는 사용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쉽고, 단순해야 한다. 납득할 필요조차 없게 만들면 더욱 좋다. 내부적으로 복잡하다 해서 경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단위로 경험을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 설명을 넣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손잡이 근처의 미세요 혹은 당기세요라는 안내를 문이 안 열렸을 때 읽는 것을 생각해보자. 설명은 사후적이다. 결론은 결국 사용자가 생각하는 대로 했는데 원하는 대로 프로덕트가 동작하면 된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게 된다고? 싶은 경험을 제공한다면 Wow를 줄 수도 있겠지?
5. 이제 5월이다. 또 열심히, 묵묵히 일하자. 먹고살아야지.
Inspiration is for amateurs. The rest of us just show up and get to work. - Chuck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