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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Aug 19. 2017

아프리카의 정전

편안했던 불편함의 기억

 매일 저녁 6시, 서울 시내가 정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첫날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대혼란에 빠질 테지만, 매일 정기적으로 정전이 된다면 적응이 되며 나름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 같다.


 그와 같은 일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살 적에 있었다. 매일 저녁 6시에서 8시 정도가 되면, 우리가 살던 온 지역의 전기가 끊어졌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데, 우리가 떠난 지금도 그렇지 않다는데, 우리가 있던 기간 동안에만 정전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알 길이 없다. 평소에는 전기가 잘 들어오다가도 매일 6시 부근에서부터 8시 부근까지는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전기가 끊겼던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딘가에 전화해서 민원을 넣거나 그 이유를 물어봤을 텐데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물어볼 곳도 없었다. 전력이 부족해서 전력 수요량이 제일 많은 시간대에 의도적으로 전기를 끊는 것인가 하는 등의 추측만이 가능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요즘엔 이렇네.' 정도의 반응이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정전이 되어도, 종업원들이 별 대처를 하지 않음에도 손님들은 당황하지 않고 주섬주섬 랜턴을 꺼내 식사를 이어가는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있었던 한 클래식 합창 공연 중 정전이 되어, 관객들이 스마트폰으로 플래시를 비춰주고 있다. 참고로, 이 장소는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건물의 1층 로비였다.

 처음 정전을 맞이한 일주일은 정말 막막했다. 전기가 없으니, 어둠 가운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 생활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태양열 랜턴을 밖에 내놓고 외출을 했다. 6시가 돼서 전기가 나가면, 랜턴을 켜놓고 함께 요리를 하고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함께 마치고 나면,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국 같으면 같이 TV를 보거나, 각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만날 약속을 잡아 밖을 나갔거나, 산책을 갔을 수도 있었겠다. 이곳은 TV도 없고, 있었어도 정전이 되니 켤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은 있었지만, 정전이 되니 인터넷도 불통이었다. 치안문제로 저녁 6시 이후에는 될 수 있으면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침대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의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등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자면 시간 가는지 몰랐다. 한국에 온 지금 생각해보니, 그 도란도란 이야기했던 시간이 참 좋았다. 너무나 불편만 할 것 같던 정전의 시간이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좋은 시간 중 하나였다.

 정전은 사실 마다가스카르에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 교통, 행정 등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아프리카에는 대부분 없거나 부족해서 불편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 우리만 불편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시계를 쳐다보며 답답해하는 동안, 마다가스카르의 사람들은 기다릴 줄 알았다. 우리가 어떻게든 빨리, 효과적으로, 편하게 가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릴 때, 마다가스카르의 사람들은 이미 천천히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한국에 살던 우리가 평소에 이용하던 것들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불편함을 느꼈고, 편함을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한국의 삶은 빠르고 편리하며, 한 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다. TV를 보며 밥을 먹고,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데도, 시간과 여유는 왜 그렇게 부족한지 모르겠다. 한국에 와서 우리 부부의 대화시간이 많이 줄었다. 의식해서 그런 시간을 가지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바쁘고 피곤하며 무엇인가에 시간을 계속 뺏긴다.

 캄캄한 밤, 전기도 없고 볼 것도 없고 즐길 것도 없었지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서로에게 내어줄 시간이 있던 그 때. 우리 부부는 마음이 편안했던 그 정전의 순간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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