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했던 불편함의 기억
매일 저녁 6시, 서울 시내가 정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첫날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대혼란에 빠질 테지만, 매일 정기적으로 정전이 된다면 적응이 되며 나름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 같다.
그와 같은 일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살 적에 있었다. 매일 저녁 6시에서 8시 정도가 되면, 우리가 살던 온 지역의 전기가 끊어졌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데, 우리가 떠난 지금도 그렇지 않다는데, 우리가 있던 기간 동안에만 정전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알 길이 없다. 평소에는 전기가 잘 들어오다가도 매일 6시 부근에서부터 8시 부근까지는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전기가 끊겼던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딘가에 전화해서 민원을 넣거나 그 이유를 물어봤을 텐데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물어볼 곳도 없었다. 전력이 부족해서 전력 수요량이 제일 많은 시간대에 의도적으로 전기를 끊는 것인가 하는 등의 추측만이 가능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요즘엔 이렇네.' 정도의 반응이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정전이 되어도, 종업원들이 별 대처를 하지 않음에도 손님들은 당황하지 않고 주섬주섬 랜턴을 꺼내 식사를 이어가는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정전을 맞이한 일주일은 정말 막막했다. 전기가 없으니, 어둠 가운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 생활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태양열 랜턴을 밖에 내놓고 외출을 했다. 6시가 돼서 전기가 나가면, 랜턴을 켜놓고 함께 요리를 하고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함께 마치고 나면,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국 같으면 같이 TV를 보거나, 각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만날 약속을 잡아 밖을 나갔거나, 산책을 갔을 수도 있었겠다. 이곳은 TV도 없고, 있었어도 정전이 되니 켤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은 있었지만, 정전이 되니 인터넷도 불통이었다. 치안문제로 저녁 6시 이후에는 될 수 있으면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침대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의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등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자면 시간 가는지 몰랐다. 한국에 온 지금 생각해보니, 그 도란도란 이야기했던 시간이 참 좋았다. 너무나 불편만 할 것 같던 정전의 시간이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좋은 시간 중 하나였다.
정전은 사실 마다가스카르에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 교통, 행정 등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아프리카에는 대부분 없거나 부족해서 불편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 우리만 불편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시계를 쳐다보며 답답해하는 동안, 마다가스카르의 사람들은 기다릴 줄 알았다. 우리가 어떻게든 빨리, 효과적으로, 편하게 가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릴 때, 마다가스카르의 사람들은 이미 천천히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한국에 살던 우리가 평소에 이용하던 것들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불편함을 느꼈고, 편함을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한국의 삶은 빠르고 편리하며, 한 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다. TV를 보며 밥을 먹고,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데도, 시간과 여유는 왜 그렇게 부족한지 모르겠다. 한국에 와서 우리 부부의 대화시간이 많이 줄었다. 의식해서 그런 시간을 가지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바쁘고 피곤하며 무엇인가에 시간을 계속 뺏긴다.
캄캄한 밤, 전기도 없고 볼 것도 없고 즐길 것도 없었지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서로에게 내어줄 시간이 있던 그 때. 우리 부부는 마음이 편안했던 그 정전의 순간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