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 그리고 라마나욧 스터디
내가 일하는 WITH에서는 라마나욧 스터디를 한다. 아니, 했었다.
잠시 멈춰있던 그 흐름을 내가 이어받게 되었다.
시작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리한 것을 아래에 남긴다.
첫달에 진행한 '인도'에 관한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라마나욧 모임을 맡게 되다.
라마나욧 모임은 왜 해야 하는가? 글을 시작하게 된 질문이다.
라마나욧 모임을 담당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라마나욧 스터디와 라마나욧 모임을 담당하게 되었다. 라마나욧 모임은 Yellow Window(이하 YW라 표기)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시간이다. 정보를 나누기 위해서는 득하는 공부, 영어로 스터디가 필요하다.(위드 내부에서는 관습적으로 공부보다는 스터디 라는 말을 쓴다.) 스터디는 지식을 모아 내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다. 지식이 소화되면 정보와 그를 통해 얻은 마음이 생긴다. 이를 나누기 위해서는 다시 정보의 가공과 선별 그리고 콘텐츠화가 필요하다. 이 과정들이 선행된 다음 단계가 라마나욧 모임이다.
흔한 인도 거리. 대부분 인도인이 믿는 힌두교에서는 소를 숭배한다.
길가와 도로에서 쉽게 소들을 볼 수 있다. 젖도 짜고, 일도 시키지만 숭배해서 죽이지는 않는다. 혹시나 실수로 소를 차로 치면 운전자는 죽임을, 차는 불태움을 당한다고 한다. 그런 인도는 세계 최대 소고기 수출국이기도 하다.(물소는 먹지는 않아도 도축이 가능하다고 한다.)
위드 그리고 YW
위드는 국제개발협력 NGO이며, 그 중에서도 식품영양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 많은 국제개발협력 NGO가 여러 나라에 도움을 준다. 도움이 필요한 나라는 어디인가? 주관적인 가치관과 객관적인 수치에 따라 갈릴 수 있는 질문이다. 위드에 그 질문을 한다면, 답은 ‘YW’이다. YW란 여러 기준을 가지고 위드가 선정한 우선적으로 도와야 할 땅이다. 현재는 총 73개국이 YW에 속해있고, 그 중 20개국을 우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국가로 정하고 있다. 위드는 단순히 ‘어려운 나라’, ‘못사는 나라’를 돕지 않는다. YW를 돕는다. 여기까지는 위드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YW는 여러 수치들로 선정되었다. 수치에 의해 발견되기도 하였다. 선정, 발견, 위탁 등등 여러 아름다운 단어들로 꾸밀 수 있겠지만, 그 땅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감동이 우선적으로 있었기에 YW를 새로이 볼 수 있는 눈도 있었을 터이다.
수치란 명확하지만 작은 등불과 같다. 놓인 몇몇 부분은 밝히지만 전체에는 미치지 못한다. 수치를 더 늘리고 나열하고 분석하면 어떨까. 나라들을 특정 기준으로 분류하고 선정할 수는 있지만 온전히 알기는 어렵다. 세상에 없던 기준을 만들고 세우는 일에는 가치가 있다. 또한 그 무게만큼 무거운 일이다. 그보다 더한 일은 만든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다. 지키기 위해서는 시도가 필요하다. YW를 발견한 데에서 크치지 아니하고, 위드에 라마나욧 모임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파트나 기차역 안, 깨진 유리창 너머로 시장이 보인다.
YW는 어쩌면 위드가 발견한 깨진 유리창이 아닐까. 깨짐을 발견한 이가 가지는 사명은 바로 회복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보고 생각한 내용 맞다.
라마나욧 모임이 필요한 이유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공된 정보와 결과물을 읽어내고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가 충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데이터는 때로 사실을 왜곡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일반화시키며, 그 시각만이 옳다고 확층편향시킨다. 정보는 일방적이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더 우선순위를 둬야하는 시간이 있다. 대상과 갖는 만남과 대화 시간이다. 무언가를 캐내기 위해 급히 물어보는 아픈 질문이 아닌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이다. 직접 만남일 수도 있고, 적힌 문장과 문장 그 사이에 있는 의중을 볼 수도 있다. 행간을 읽는다고 한다. ‘알기’가 아닌 ‘알아가기’위함이다. 기약 없는 만남일지라도 묵묵히 그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한 나라에 대한 알아감도 그렇다. 앞에서 설명했듯 위드는 YW로 73개국을 지정했다. 그 중 20개국은 우선적으로 도와야 할 나라로 다시 분류된다. 그 20개국 중 하나인 ‘인도(India)를 예로 들어보자. 인도 사람들은 위드라는 단체가 자신이 사는 국가를 또한 자신들을 YW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만약,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군대에서 나도 모르게 관심병사로 지정받고, 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위한 관리감독을 받는 기분과 비슷할까. 그들은 어떨까.
어떠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는 'YW로 지정됬다.' 라는 사실 외에도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심지어, 도움이 필요한지 우리가 생각하는 필요가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필요와 일치하는지 여부부터 말이다. 그 시작이 라마나욧 스터디이다. 전부를 알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들도 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말이다.
힌두교와 불교 발상지인 바라나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순례객이 모인다.
인도에는 신이 3억 3천만 정도 있다고 한다. 숫자 자체에 의미는 없지만, 무제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라마나욧스터디 ; 인도
지난 라마나욧 모임에서 나눌 나라는 인도(India)였다. 멀지 않은 지난 5월, 리서치차 인도를 방문했다. 이주가 채 안되는 기간이었다. 이번 모임과 관계있는 방문은 아니었다. 현장감이 사라지기 전에 이 스터디를 하게 되어 다행이기도 했다.
인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책을 찾으니 인도를 다룬 여행 에세이류가 많았는데, 그 외 심도있는 정보를 다룬 책은 많지 않았다. 관련 세미나도 다녀왔다. 현장에서 살아가시는 분들이 해 주시는 경험과 조언이 실체적으로 다가왔다. 인도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인도 특유 종교와 사상이 녹아 있는 영화들도 있지만, 오히려 상상할 수 있는 악습들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영화가 주류처럼 등장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던 다큐멘터리를 이번 기회를 핑계로 보았다. 한 사람이 관심을 가졌고,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허나 진정한 변화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매일 아침, 시간이 없으면 저녁에라도 신문을 꼭 챙겨보려 노력한다. 관심을 갖고 보니 인도에 관한 기사가 의외로 많았다. 총리가 바뀌고서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하고 있기에 주목받는 인도였다. 경제와 인권, 사회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관심이 가는 기사들은 스크랩도 했다.
이번 인도 스터디에 제목을 붙인다면 ‘젊은 인도’이다. 전 세계 30세 이하 인구 중 5명중 1명은 인도인이다. 종교,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여러 분야에서 변화와 반응이 빠르다. 카스트제도, 여성차별 등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빠르게 무녀져가고 있다. 핵 보유국이며 IT 강국이라지만 특정 지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빈부 차이만큼 삶 자체가 가지는 어려움이 큰 나라가 인도였다.
갠지스강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시체를 화장하고, 빨래를 하고, 씻고, 물놀이 하는 이 모든 일들을 갠지스 강에서 볼 수 있다.
라마나욧 그리고 아픔의 거리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라마나욧 모임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아픔에는 거리가 있다. 대상이 가지는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과 내가 갖는 거리도 있다. 대상을 사랑하고 알게 될 수록, 아픔과 내가 갖는 거리는 줄어든다.
아픔이 있는 거리가 있다.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걸어 넘어가야 하는 길이 있다. 내 발로 직접 걸을 때에, 멀리서는 차를 타고는 볼 수 없는 아픔을 봐야만 한다.
라마나욧 스터디는 무얼까. 나름 결론을 내면, 이 ‘아픔의 거리’를 줄이는 또한 걷는 일은 아닐까.
길을 걷는 이는 내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길을 걸은 자들이 있다. 그 목적지는 같더라도 길은 다를 수 있다. 시간과 공간, 두 축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당연하다. 앞서 걸은 이가 변한만큼 길도 변했다. 업데이트 되지 않은 가이드를 따라가려면 시작부터 이질감을 느낀다. 결국 길은 걷는 각자가 개척해야 한다. 길에 올랐고, 오르고 있고, 오르려는 모든 사람이 느꼈고, 느끼고 있으며, 느끼지 않을까.
한 가지, 공통된 감동이 있다. ‘아픔의 거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을 때, 밟지 않으면 몰랐을 그 거리를 걸었을 때, 아픔이란 단어가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이다.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한 말이다. 저 땅이 YW라고 말하는 행위는 어렵지 않다. 그 땅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변했는가는 다른 일이다. 이제야 조금, 앞이 보이는 듯 하다.
파트나역에서 떠나기를 기다리는 기차. 정확한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기차는 결국 출발하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필요한 것은 기다림과 기대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