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난임에서 확실한 임신으로
1이라는 숫자는 참 묘하다. 0이면 없지만, 1이면 있다. 1은 존재 측면에서 0%와 100%를 결정한다. 허나, 1이 체감적으로 의미있는 숫자이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확률(%)로 따져 보았을 때, 사실상 0에 가깝지만 0은 아닐 때 쓰이는 숫자도 바로 1이다. 누구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기도, 다른 누구에게는 희망을 빙자한 고문이기도, 혹은 그 둘 다이기도 하다. 사실 나에게 그랬다.
우리 부부는 이년 전, 임신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유쾌하지 않게도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임신이 되지 않았다. 설마설마 하다가 난임 전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 설마가 바로 우리 부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불임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현대의학(?)이 발달한 탓에, 불가능한 임신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난임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했다. 임신이 어렵다. 어려운 임신. 문장이나 단어로 틀지어 대상을 몰아넣으면 차이가 없어 보이겠지만, 그 모양과 정도가 각각 다르다. 우리 부부 같은 경우, 그 어려움을 확률로 나타낸다면 1%였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거의가능치 않다. 말장난같아 보이지만 사실이다. 중학교 때 배운 few와 a few의 차이를 이런 때에 쓰는 것이었을까. 물론 번개맞을 확률을 상회하는 로또보다는 높지만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로또는 814만장을 사면 100%지만, 내 생은 단 한번 뿐이었다.
의사는 시험관 아기를 권했다.
의사는 인공수정도 안된다 했다. 시험관 아기를 권한다고 했다. 의사로서 내릴 수 있는 적절한 의학적 소견이었다 생각한다. 허나, 선뜻 내키지 않았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시험관 아기를 하는 여성이 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우리 부부도 자연을 바랐다.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약속을 정했다. 올 7월까지만 기다려보자. 그리고 8월에는 무엇이든 결단을 내리자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냥 고집이었다.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없는 삶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덜컥(?) 임신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 또 다른 의미로 설마설마 하고 중얼거렸다. 테스트기에 희미한 두줄을 확인하고, 다음날은 조금 덜 희미한 두줄이 되었다. 동네 산부인과를 찾아가 피검사를 하니, 임신을 증명하는 수치가 하나 추가되었다.
아내가 의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혼잣말일수도 있겠다.
“확률이 1%도 안된다고 했는데...”
이어지는 의사의 답변이 머리를 때렸다. 물론,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충분히 맞았다.
“1%도 확률이지요.”
그랬다. 1%도 확률이었다. 1이라는 숫자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작은코 다쳤다. 그게 내 모습이었다.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고 싶다. 누구는 임신소식이 출산이라는 단어를 의미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번에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싶다. 그리고는 아마 다음 단계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기대된다. 솔직히 불안한 마음도 있다. 허나, 이번엔 뭔가 다르다. 기대가 현실로 조금씩 이뤄져갈것만 같다.
그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 2년 전부터, 아파서 그저 묻어놓았던 것을 조심스레 꺼내 싹을 틔우려 한다. 한가지 소망이 있다. 이 기록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어떤 것을 쓸까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험에서 끝나지 아니하며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가 현실로, 현실이 소중한 경험으로 글로 적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