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 나물 참기름 냄새를 알다.
아내가 입덧이 심하다. 어지럽고, 냉장고 문도 열지 못하고, 부엌에도 가지 못한다. 그런데, 음식은 잘 먹는다. 아마 글을 읽으신 분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 반응도 그렇다. 그래도, 입덧이 심하다. 주변에 있는 김치 유통업체를 지날 때마다 아내는 죽을 맛이다.
아내가 엄마(우리 엄마=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육개장 먹고싶어!"
우리 아내는, 우리 엄마(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옆에서 듣던 외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나연아~ 그 정도는 그냥 한그륵 사먹어~"
이 말을 하신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에게 매우 혼났다고 한다ㅋ
"엄마, 임산부한테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섭섭한데!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라고 말이다.
어쨋든, 아내가 건 전화를 계기로 엄마가 육개장과 기타 반찬들을 해 주었다. 아내는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떠났다. 아내는 입덧 중이고, 남은 반찬들을 먹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남은 반찬들은 내 몫이었다.
사실, 당일에는 몰랐다. 이후, 반찬 하나하나를 먹다보니 알게되었다. 숙주나물에 배어있는 참기름 냄새가 너무 향긋했다. 처음 먹었을 때에는 몰랐다. 한 가닥씩 씹다보니 그랬다. 참기름 향이 풍겼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계속 풍겼다. 엄마가 생각났다. 몇가지의 나물을 무쳐 왔는데, 어떤 마음으로 무쳤을까. 분명,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물도 무쳤겠지.
엄마는 입덧이 심했다고 한다. TV에 나오는 음식을 보기만 해도 토가 나왔다고 한다. TV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계시지 않은 우리 아버지도, 저~기 밖에서 몰래 쭈그려 앉아 비참하게 라면을 끓여먹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고백이지만, 우리 엄마는 깔깔 웃으면서 "나 아기 지울래..."라고 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내가 태어나기는 했으니 웃을 일이다. 내가 태어나지 못했다면 울만한 일이었겠지만. 반면에, 우리 장모님은 입덧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딸이 하는 입덧이 부럽다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입덧을 하지만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육개장을 끓이고, 맛난 반찬 여러가지를 했겠지. 엄마는 내가 자식이 없을 운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누군가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픈 기억을 감싸고 싶었을까, 기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둘 다 였지 싶다. 비중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지금 이 순간, 엄마가 해준 숙주 나물 무침을 먹는다. 아작 아작, 식감이 훌륭하다. 우물 우물, 씹다보면 깜박이도 안켜고 참기름 냄새가 내 코를 공격한다. 캬... 하고 감탄이 나온다. 순간 타오르는 열정이 만들어낸 맛은 아니다. 지난 기억과 경험과 정성과 공감이 섞여 들어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