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꼰대가 된 친구의 한마디
"일단은, 검사 결과만 보면 확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단, 안전성을 완전히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휴... 하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차 기형아 검사까지 마치고, 검사 결과를 마주하기까지 다시 일주일. 우리 요벨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자라고 있다는 증거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17주를 맞이했다.
"이제 출산할 병원으로 가면 되겠네요~ 출산 잘 하고, 아이 낳고 또 와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의사 선생님의 인사였다. 아내와 한참으로 이야기하고 나서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병원은 강남 ㅊ병원이다. 난임으로 어려움을 갖고 있는 부부가 주고 다니는 병원이다. 앞선 글에 여러 설명이 있지만, 우리 또한 난임이었다. '자연 임신 확률은 1%도 안된다.'가 의사 선생님이 내릴 수 있는,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의학적 소견이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기한 막바지에 우리 요벨이가 기적처럼 찾아왔다. 여기에서 병원의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가해볼까. 시험관이나 인공수정을 통해서 아이가 생긴 것은 아니다. 허나, 의사 선생님이 아내 생리주기를 일정하게 되는 데에 초점을 맞춰주었고, 그 일정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요벨이가 생겼다. 우리 부부는 농담삼아 그 의사선생님을 '산신령'이라 불렀다.
이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은 아이가 생기고 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이 병원에서 출산할 사람, 혹은 집 근처에서 출산할 사람. 어느정도 시기까지는 관리 차원에서 이 병원에 다녀야 한다. 그 어느정도 시기가 지나면 출산할 병원을 결정해야 하는데, 그 때를 '졸업'이라고 표현한다. 남들과 조금 다른 형태이지만, 우리도 드디어 '졸업'의 때를 맞이했다. 시간이 이정도 지났다는 뜻은 아이가 건강히 자라고 있다는 것과 맥이 같다. 이제 2차 기형아 검사까지도 안심할만한(?) 결과가 나왔지만, 아직도 긴장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미 한번, 유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산은 정말 끔찍한 경험이다. 경험이라고 불리는 모든 시간이 그렇지만, 겪지 않고서는 공감하기 힘들다. 보이지 않는 생명이 뱃속에 있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배신당한 순간이다. 분노, 슬픔, 처참함, 무력감 등등 여러 만감이 교차한다. 생명이었을까. 생명이기는 했을까. 그토록 기뻐하고 이름을 짓고 애정을 쏟았던 지난 시간이 진할수록 아픔은 더하다. 심지어, 판정을 받은 후에는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한다. 병원이란 바로 산부인과이다. 이 때 기분이 또 묘하다. 같은 이름을 가진 공간 한켠에서는 한 생명이 태어나고, 반대편에서는 생명이 떠나간다. 아예 없었을지도 모르는 생명이지만 그를 떠내보내기 위해서는 출산과 같은 아픔을 겪고 회복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만 치면 결혼을 일찍 한 편이다. 그런데 내가 한번의 유산을 겪은 사이, 뒤따라 결혼한 친구들에게 아이가 생겼다. 그 후에 얼마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난임 판정을 받았다. 1%라는 확률은 이전에 생겼던 아이에게도 적용되는 숫자였다. 그 작은 확률임에도 생겨났지만, 결국 그 생명을 유지하지 못함에 대해 더욱 아픔이 컸다. 한번의 임신. 친구들과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은 여기까지이다. 이 경험은 다시 유산과 출산으로 나뉜다. 같은 시간, 나와 친구들은 다른 경험을 했다.
이 와중에 요벨이가 우리를 찾아왔다.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또한 얼마나 조심스러울까. 예전에는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동네방네 소문을 냈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했다. 임산부가 취해야 하는 조심의 정도도 남들과는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했다. 그 행동이 우리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허나, 적어도 우리가 한 행동이 후회로 남게하고는 싶지 않았다.
임신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던, 기대만 있고 확신은 하지 못했던 때에 친구들과 여행 약속을 잡았다. 이제 사회에 진출하여 몇몇은 가정이 생겼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같이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이 여행에는 키워드가 있었는데 '의리'였다. 여행을 안간다는 사실은 곧 의리 없음을 뜻했다. 뭐, 이에 대해 별 이의는 갖고있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 일정을 정하고서 요벨이가 우리를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고민을 했다. 여행은 일박 이일이었다. 내가 하루 없다고 해서 아내에게 힘든 일이 생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허나,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기쁜 소식, 허나 그 기쁨을 잃어버릴까 염려하는 마음이 이 당시만 해도 기쁨을 앞섰다. 아무래도, 나는 아내 곁에 있어야 했다.
친구들의 여행에서 모두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사정(이라고 쓰고 핑계라고 읽는)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다같이 단체 메시지창에서 일정을 조정하는 때였다. 이 가운데에, 내가 기쁜 소식과 함께 미안함을 전했다. 다들 이해해줬다. 그런데, 계속 <f(여행 안감)=의리 없음> 함수를 적용하는 친구가 있었다. 사실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가지 못하는 것은 의리랑은 상관이 없다라고 했다. 그때, 아이가 있는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들도 임신 다 해봤다."
"우리들도 임신 다 해봤다." 이 문장에 담긴 뜻은 단순히 경험이 있냐 없냐를 넘어선다. '우리들 중에, 이미 임신도 하고 출산을 해서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너는 이제서야 아이를 가졌지. 즉, 나는 너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경험을 갖고 있어.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너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웠고 알고 있고, 느끼고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 이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모든 주제는 너 보다는 내가 더 옳아. 우리도 아이 가져봐서 아는데, 임신했다고 여행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의리 없는 것이 맞는거야.' 짧게 이야기하면 이정도일까?
메시지창이었지만, 나는 할말을 잠시 잃었다가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래, 근데 유산은 안 해봤잖아"
왁자지껄하게 내 메시지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위로 올라갔다. 허나, 그 다음에 의리에 관련된 대화는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사실 더 있었다.
너 임신 두 번 안해봤잖아. 난임 판정 받아서 1%도 확률이 안되지도 않잖아. 첫 아이 생겼다가 유산되어보지 않았잖아. 그 와중에 다시 새로운 아이가 생겨보지도 않았잖아. 너와 나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며 살고 있는데, 같은 상황을 적용시켜 네가 정의한 옳고 그름의 프레임 안에 억지로 우겨넣으면 안되지.
물론,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 마음의 소리였다. 그 친구가 이에 대해 한 마디만 더 했어도, 나는 마음을 문자로 옮겼을 것이다. 만약, 이 말을 했으면 유치하다고 했을까. 구질구질하다고 했을까. 근데, 저 뒤에 진짜 그 친구를 향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며칠 전, 영국 BBC에서 우리나라 은어인 '꼰대'를 소개했다. 나이든 사람 중, 그들이 항상 옳다고 믿는 사람(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항상 틀렸다고 하는)이라고 미약하게 해석할 수 있겠다. 조금 더 해석을 붙여볼까. 변한 맥락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이 경험한 것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 시대에 한 그 경험, 그로 인한 판단을 개인적 차원에서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허나, 시대가 변했다. 맥락이 변했고 상황이 다르다. 이 가운데에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변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은 것만 주장하니 불협화음이 나기에 쉽다. 물론,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존중할 수 있다. 그 또한 우리 몫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렇다라고 함께 동의한 기준 아래에 '인정'하는 것. 연습 가운데에 불협화음은 날 수 있다. 허나, 이 불협화음이 실제 공연까지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다시 또 주목을 받는 386 세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많은 이들이 이 세대에서 꼰대를 본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An older person이 곧 who believes they are always right은 아닌 것처럼.
'우리들도 임신 다 해봤다'라는 말을 뱉은 친구는 늙지 않았다. 30대 초반을 늙었다고 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꼰대'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요즘 다시, 이를 두고 '젊은 꼰대'라고 하나보다. 혹여나, 오해할까바 밝히어 둔다. 나는 그 친구를 참 사랑한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냈고, 할 수 있는 위로와 도움을 주고 받은 친구이다. 그 친구가 말을 뱉은 이유는 아쉬워서일 것이다. 간만에 같이 모여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는데, 마음처럼 안되니 속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오히려 특수한 상황인거지 그 친구가 더 다양한 사람들이 겪을 일에 해당하는 일반적 경험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친구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듯, 나 또한 그 친구를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왜 이해해주지 않아? 라고 투정부린 것은 내 쪽이었다. 먼저 이해해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그 마음이 나의 치명적인 부분을 손상시키지는 않으니까. 괜찮다.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허나, 내 마음대로 되려나.
'청렴함에는 청렴하다는 이름조차 없으니 그런 이름을 얻으려는 것부터가 바로 그 이름만을 탐욕 함이라'
- 채근담 -
채근담에서 본 한 문장이 생각난다. 청렴함이라는 이름을 취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라 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꼰대라고 평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꼰대'라는 단어 또한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좁은 틀일 테니까.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으로 비춰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나도,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다음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가 되어갈 것이다.
아이가 생기니 달라진 점 하나는, 모든 것들을 아이에 맞춰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여기에서...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모든 것들을 아이에 맞춰서 행동해? 아이 태어나면 더 심한데, 아직 잘 모르면서 이야기하네... 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 분도 부분적 꼰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태어나면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겠지. 허나, 이미 많은 것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 아이에 영향을 받고 있다.)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던 말버릇도, 요벨이가 태어나기 전에 고쳐야지 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기물들과 위치, 방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조금 더 무리를 해서 참여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정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한다.
단순히, 아내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신비로움과 경외심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요벨이는 단순한 생명체, 보다 넓은 의미의 인격체가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도 하고, 이 세상에 영향을 받고 또 주겠지. 나는 어떤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미쳐야 혹은 줄여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