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평 남짓 조그맣고 습한 방. 주택가 밖에서는 금요일 밤이란 걸 환기하듯 술 취한 행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창가를 향해 욕을 한뭉텅이 뱉...지 못하고 다시 요 위에 눕는다. 발밑에서 낡은 선풍기의 날갯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첫 직장을 호기롭게 퇴사하고 공기업과 공무원을 함께 준비하던 시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른 채 어딘가로부터의 합격에만 목을 맸다,
무직자라는 위치가 외발자전거를 타는 듯 불안해서, 넘어지면 코가 깨질 것 같아 뭐라도 공부해야 마음이 편했다.
누구는 퇴사기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지만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여행이 사치일 만큼 나는 나를 가난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걸까.
이 책, 저 책 보고 일타 강사 강의를 들으며 어딘가는 붙겠지라는 가난한 희망에 내 시간을 쏟던 시절.
그 시절 나는 4년을 사귄 사람과 헤어졌다.
교통사고 같았다.
재취준 중에 이별한 나는 응당 그래야하듯
공부를 계속했고, 입사 시험을 치러 다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사고 직후 정신없이 주변을 수습하듯,
내가 할 수 있는 건 외발자전거에 빨리 보조바퀴를 다는 것뿐이라 생각해서 절실했다. 바쁜 일상 덕분이었을까, 잠시동안은 괜찮은 줄 알았다.
다른 사고들이 그렇듯 사고의 후유증은 뒤늦게 찾아왔다.
2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밤만 되면 이별의 순간이 떠올랐고 그때의 악에 받친 감정들이 머리를 두드렸다.
그 사람의 아픔이 뒤늦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난 나를 혐오했고 찾아오는 아픔을 거절하지 못했다.
캄캄한 어둠을 마주하면 외로움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우울과 절망이 고개를 쳐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면 걸었던 밤길. 걷고 나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내게 있어 과거란 이런 것이었다.
남들 좋다하는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겉돌았고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들어갔지만 버티지 못했고
누구나 하는 이별에도 나는 나를 혐오했다.
내 과거에는 아픔과 후회가 참 많았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볼수록, 자꾸만 늪에 빠지는 것 같이 허우적댔던 걸까?
변화는 인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인정 말이다. 진정한 인정이란 어떤 것일까?... 인간에게 진정한 받아들임이란 그런 것이다. 비난하지 않고,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둘 수 있는 상태 말이다. 그게 나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줄 수 없는 상태,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영향력이 ‘제로’인 상태...
게리 비숍, <내 인생 구하기> 이지연 역, 용진지식하우스, 2020.
이미 지나간 것.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
과거가 그런 것 아닐까?
변화는 인정에서 시작된다.
이미 지나간 건 지나간 거다.
지금의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내가 놓쳤던 기회들, 망쳤던 시간들,
아팠던 사람과 사랑 모두 지나간 것이고,현재의 내가 풀 수 없다면,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