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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패 연 Apr 18. 2023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

예민한 교대근무자의 불면 극복기 part-1




집에 들어와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방 안에






말이 있었다.



멋있는 말이었다. 갈색 털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말이 지낼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방 한 켠으로는 가구들이 모두 옮겨져 있었다. 왜 사왔느냐고 어떻게 구해왔냐고 엄마에게 물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을 큰 애정으로 돌봐주던 엄마를 보고

'저 말은 엄마 말만 듣고 엄마만 좋아해서, 나는 싫어하겠다.' 걱정 했던 기억은 난다. 나는 겁이 많았고, 익숙한 방에 들어온 이 낯설고 거대한 동물을 경계했다.



그러나 말은 정말 온순하게 잠만 쿨쿨 잤다. 세상 모르고..

내가 옆에서 조금 시끄러운 소리를 냈는데도 그저 계속 잘 뿐이었다.



아마 어딘가에서


제주도나, 서커스 같은 곳에서 사람을 태우거나 마차를 끌며 수 년을 살아왔던걸까?

고된 노동을 하다 이제 의무에서 벗어난 건가..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단번에 풀어버리려는듯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말을 보자, 경계심은 녹아버렸고  측은지심마저 들었다.





아... 꿈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0분이다. 몇 번 뒤척이다 이부자리를 개고 일어난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 엄마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안방문을 닫고 물 한잔 들이킨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계속 들쑥날쑥했다.


깨는 건 큰 문제가 안됐다.

다만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시간들이 고통스러웠고, 

다음 근무를 위해 잠을 청할 때는 더더더 잠이 오지 않아서 근무에도 영향을 줬다.

쫓기듯 숙제를 풀 수는 있지만, 잠을 숙제처럼 쫓기듯 잘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풀지 못한 숙제 때문에 혼이 나는 것처럼,

충분히 자지 못했던 수면은 나의 몸과 일상을 혼냈다.



근무 중에는 긴장과 카페인 속에 억지로 깨어있을 수 있었지만, 피곤함은 중간중간 날 흔들었고 잔실수가 늘어갔다.

퇴근하면 기절하듯 잤고, 배가 고파 무언갈 먹으면 배가 불러서 잤다.



나보다 오래 교대근무를 했던 직장선배들은 하나 둘 몸에 이상이 온 듯 했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거나, 잦은 야식으로 10Kg 넘게 몸이 분 사람도 있었고,

정수리가 휑해진 사람도 여럿 보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 캐릭터 '셜록홈즈'는 타인의 인상착의만으로 그 사람의 히스토리를 추리해내고 놀라운 프로파일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그의 능력은 바로...



자신이 원할 때, 어디에서든 잠에 빠지는 능력이었다. 

(실제 세계에서 셜록홈즈와 같은 추리능력은 거의 없겠으나, 잠귀가 어둡고 바닥에 눕자마자 코골며 잘자는 사람들은 꽤 있다... 정말 부럽다...)



나는 잠귀가 밝고 예민한 사람이여서, 약간의 소음이라도 있으면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다.



사실 소음보다 힘든 건 잡념이었다.

작은 소음정도야 귀마개를 꼽으면 막을 수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 요동치는 소리들은 막을 재간이 없었다.

내 감정의 바다는 어둡고 조용한 시간이면 더 큰 파도를 일으켰다.



교대근무의 가장 큰 특징인, 낮과 밤이 바뀌는 환경은 천성이 예민한 내게 치명타였다.






말은 보통 제자리에 서서 잔다고 한다.

하루에 자는 시간도 3시간 정도에 불과하단다.



포식자들에게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일 것인데... 잠을 청할때 나는 왜 말처럼 주변의 소음과 잡념, 과거와 후회에 발목을 잡힐까.



꿈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있던 말을 보고, 애잔했던 감정이 들었던게 떠오른다. 항상 피곤함을 달고 사는 나를 바라보던 감정이었을까?



말이 항상 네 다리로 서서 자는것은 아니다.

앉아서 자기도 하고, 옆으로 누워서 자기도 한다.

다만, 주변 환경이 아주 안전하다고 확신이 들 때만



나도 꿈 속의 말처럼 아무 걱정없이 푹 잘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상념과 얼른 잠에 들어야하는 압박감을 떨처낼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나 주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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