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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패 연 Mar 30. 2023

교대근무를 교대해주세요.

 설국열차에 내가 탔다면 어떤 칸에 있을까?

그렇지만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회사였다. 낮지 않은 연봉과 높은 고용 안정성을 가졌고, 5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입사한 회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 회사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만약 퇴사를 하고 운좋게 다른 직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신입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터였다. 서른중반을 바라 보고 있는 나이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경력을 쌓고 나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요원하다는 것이었다. 이직이 불가했다. 그럴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회사가 망한다면, 회사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로였다.





선배, 지난주에 처음으로 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작년에 결혼한 따끈따끈 새신랑 후배가 속상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다. 코로나로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타협했던 후배커플은 늦게나마 태국 여행을 계획했다. 와이프의 이직을 축하할 겸, 아쉬웠던 신혼여행의 여운을 해소할 겸.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일사천리로 준비되는 듯 했던 여행은, 하지만 거대한 암초에 걸리게 되는데...


대근자(대체근무자)를 구하지 못했다.!


후배의 교대근무를 받아 줄 대근자가 아무도 없었고... 후배는 결국 휴가를 내지 못한채 방콕 여행을 떠났다.

고작... 하루치기였지만.



덕분에 발바닥 뜨겁게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ㅎㅎㅎ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저 혼자 돌아왔지만...


혼자? 와이프분은?


와이프는 혼자 관광하다가 나중에 돌아왔죠. 뭐. 저보고 회사 왜 그러냐고... 진짜 그때 퇴사하고 싶더라구요. 근무 안받아주는 사람들도 밉고.     




<영화 설국열차 中>

                                                                                                                              

교대근무. 언제든 교대 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누군가로부터 나의 자리가 교대가 될 수 없다면 나올 수가 없다. 휴가를 낼 수 없다. 설국열차의 엔진 칸에 부품을 대체 들어가 있는 아이가 자리를 비울 수 없듯이.

 

중요한 사정으로 휴가를 내고 싶더라도 누군가가 받아줘야만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자리. 그래서 휴가를 가고 싶더라도 다른 근무자들에게 부탁해야 하고, 휴가를 가고 싶은 이의 근무를 싫더라도 억지로 받아 줘야하기도 하는... 여타 직장인보다 조금 더 회사에 종속되어 있는 자리.     


그렇지만 그런 자리가 내겐 밥줄이었다. 다른 밥줄을 대체할 것을 찾지 못한다면, 대근자를 구하지 못해 휴가를 갈 수 없었던 후배처럼 나 역시, 이 곳을/설국열차의 부품칸을/ 벗어날 수 없었고 혹 벗어난다면 나의 사회적 능력은 상실될 터였다.



내가 풀 수 없는 문제였다.

앞에 놓인 돌덩이는 너무도 견고하고 거대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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