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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직장인 Sep 19. 2022

펜과 키보드

익숙한 것이 어색해지는 순간

 컴퓨터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매일 키보드를 두드리며 해야 될 일과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24시간 중에 반 이상을 차지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각종 비용 처리를 위해 전표를 출력해서 펜으로 서명을 했었는데, 재택근무를 하고 온라인으로 비용 처리도 다 되기 때문에 지금 나의 책상 위에는 펜 한 자루도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화이트보드에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보드마카를 이용해서 화이트보드에 몇 글자 적었기에 손에 펜을 쥐는 감각이 어색하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요즈음에는 패들릿(padlet)과 같이 온라인상으로 업무뿐만 아니라 상호 간에 의견을 나누고 바로바로 온라인으로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도 생겼다. 이 또한 키보드를 통해 기록을 전부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펜을 쥐는 일은 점점 더 드물어졌다. 물론 개인적으로 별도의 펜이 있는 패들릿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무리 심이 없는 펜이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펜, 연필과는 느낌이 달랐다.

 키보드는 PC나 노트북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들고 다니고 PC 보다 사용 시간이 많은 핸드폰에도 대부분 자판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결제를 할 때도 이미 핸드폰에 서명을 등록해놨다면 별도의 서명 없이도 물건을 구매하거나 주문을 할 수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하루에 펜을 만지는 일이 거의 없는 날도 있다.

 며칠 전 나는 나의 책을 읽고 SNS에 멋진 후기를 남겨주신 몇 분들에게 저자 서명이 담긴 책을 선물로 보내드렸다. 독자들에게 드리는 선물이기에 멋진 문구도 생각하고 어디에 쓸지도 다 정했다. 그런데 펜을 들고 첫 글자를 쓰자마자 '이런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 글씨체가 멋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글자 크기, 줄 간격은 맞춰서 썼다. 그런데 책 첫 표지 뒷장에 쓴 첫 글자의 모습은 예전의 나의 글씨체가 아니었다. 자음과 모음이 서로 따로 놀고 크기도 다르고 간격도 삐뚤빼뚤했다. 다시 쓰고 싶었지만 책의 여러 장 중에 한 장이고 찢어서 버릴 수도 없었고 이것 때문에 책을 다시 주문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부리나케 서랍 장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메모지를 꺼내서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서 남은 글자는 최대한 잘 써보기 위해 썼다 지웠다를 여려번 반복했다. 결국 모든 글자들의 모습이 각자의 개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상태가 되었다.

 펜을 가지고 글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글씨체가 예뻐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예쁘면 좋다.) 정말 오랜만에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무언가를 쓸 당시의 느낌이 기억나는가? 분명 태어나서 처음 펜을 잡고 쓰기 공부를 했고 시험지의 주관식 / 서술식 문제를 손이 아플 정도로 풀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도 써봤고 사직서도 직접 펜으로 썼지만 정말 오랜만에 펜을 잡고 글씨를 썼던 그 순간은 뭔가 정말 어색했다. 나에게 정말 익숙했던 일 중의 하나였던 펜을 들고 무언가를 쓰는 일이 이렇게 어색해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우리는 살면서 익숙했던 것이 어색해지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한다. 내가 말한 펜을 잡고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좋아했던 음식이 갑자기 먹기 싫어지는 경우도 있고 나의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던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어색해지는 순간도 경험했다. 익숙했던 길이는데 뭔가 바뀌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처음 가는 길 같은 어색함을 느낀 적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 듣고 따라 불렀던 노래도 어느 날 갑자기 가사가 생각이 안 나고 처음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이것은 기억력과는 다른 문제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향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혹자는 익숙한 것이 어색해졌다고 하면 조기 치매라고 얘기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것이 어색해지는 순간은 어쩌면 내가 좋아했던, 내가 자주 즐겼던 무언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펜으로 무언가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고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면 펜을 꺼내고 아무 종이에 심지어 가게에서 쓰는 냅킨에도 글을 썼다. 오랜 기간 동안 다이어리에 일기를 썼고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도 화이트보드나 수첩에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랬던 내가 펜이 어색해졌다는 것은 키보드를 쓰는 것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고 핸드폰 자판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하다는 것이 아니다. 선호도의 문제는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 아니다.

 펜, 무언가를 쓰는 것을 좋아하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점점 달라지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 익숙했던 것이 어색해지면서 관심도 없어지고 그것을 소홀히 여기게 된다는 것, 어쩌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변해서 싫고 두려운 것은 아닐까?

 익숙했던 순간, 익숙했던 경험, 익숙했던 상황과 감정들에 함몰되어 인생을 살면 사람이 변할 수 없다. 조선시대 쇄국정책을 외치고 명과의 사대를 목청이 터져라 외쳤던 사대부 양반처럼 고지식한 꼰대가 될 뿐이다.  그래서 책《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저자인 구본형 작가는 '사람들은 변화를 바라면서 두려워한다. 변화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으면 위안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소중히 생각하는 무언가 와는 멀어지고 싶지 않다. 나의 소중한 가치이고 나의 트렌드 마크이며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이 돼버린 그 익숙함이 결국 나라는 존재를, 나라는 사람을 지탱하고 있다.

  나의 익숙함은 결국 나다. 나의 존재의 가치를 뒤흔드는 변화는 무시하고 살고 싶지만 세상이, 상황이 가만히 두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치를, 나의 익숙함을 지키면서 살고 싶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도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외골수 같은 꼰대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상식이 통하는 선은 지키면서 나의 익숙함을 잃지 않는 그런 어른,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책장을 뒤져서 나온 아무 펜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낙서를 마음껏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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