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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직장인 May 03. 2023

나를 찾아가는 100가지 질문_열세 번째

나는 어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옷이라.. 옷이면 패션 감각과 동일한 것일까? 열세 번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옷장을 열었다. 색깔도 스타일도 정말 가지각색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글로 쓰면서 이 글이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심히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난 옷과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옷가게에서 옷을 보고 있으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바지 성애자 같아'


 바지성애자.. 생각해 보니 나의 옷장에는 바지가 유독 많다. 많다고 해서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비슷한 색상과 스타일의 바지가 참 많다. 바지 스타일의 이름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의 바지는 대부분이 일자 면바지, 색상은 남색 / 검은색 / 베이지색이다. 왜 바지가 많은지, 바지를 왜 많이 사게 됐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지만 항상 바지를 사고 나면 '아.. 맞다. 비슷한 스타일이 있는데'라는 후회 섞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내가 어떤 바지를 갖고 있는지 모르니깐, 당장 월요일에 출근할 때 입어야 되니깐 눈에 보이는 대로 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보처럼.


[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mind_director/222131707514 ]


 옷을 입을 때 좋아하는 스타일은 있다. 면바지에 셔츠 그리고 카디건과 니트.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다 직장인 Look으로 입는 그 스타일을 나도 즐겨 입는다. 사실 즐겨 입는 것은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패션 감각이 꽝이어서 가장 무난하고 가장 평범하면서 가장 깔끔하게 연출할 수 있는 스타일이 바로 직장인 Look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옷 입는 스타일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대학교 2학년까지는 어머니와 옷 가게를 가서 옷을 샀는데 면 티셔츠나 색깔이 과한 것, 화려한 것, 찢어진 옷들은 살 수도 없었고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깔끔하게 보이고 점잖아 보이는 옷을 골라주셨다. 그 영향을 아직까지 받고 있지만 옷 스타일이 바뀐 적이 크게 두 번있다.


 첫 번째, 군대에 있을 때다. 군대에서는 항상 전투복을 입었다. 주말에는 평상복을 입었지만 대부분 트레이닝복과 같이 편하게 입고 막 벗을 수 있는 옷을 입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원색 계통, 예를 들면 빨간색, 주황색 바지, 녹색바지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셔츠도 마찬가지였다. 평상시에는 하얀색, 검은색, 색이 조금 들어가면 남색 정도였는데 하늘색, 노란색, 분홍색 등 밝고 쨍한 색들의 옷을 사기 시작했다. 아마 군대라는 환경 속에서 튀지 않고 무난하게 주변에 잘 동화되어야 했던 삶에 지쳐서 옷을 통해 나의 개성과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휴가를 나가면 군인이라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옷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숨겨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때의 옷들 중에 아직도 갖고 있는 옷이 있는데 그 옷을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다. '와~내가 이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갔을까?' 할 정도로 말이다.


 두 번째, 거제도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나는 2022년도, 작년에 거제도로 귀촌을 했다. 추후에 귀촌 Story는 별도로 이야기하겠지만 거제도에 살면서 옷 입는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 어머니가 "옷을 왜 그렇게 입고 다느냐"라고 할 정도로 편하게 입는다. 물론 옷은 T(시기) P(장소) O(상황)에 따라 개념을 가지고 입고는 있지만 회사도 1주일에 4일이 재택이고 온라인으로 만나서 회의하고 가끔 한 번씩 고객사 미팅이나 교육 때만 제외하고는 전부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최대한 편한 옷을 입고 있다. 그래서 지금 옷장에는 대부분이 트레이닝복, 다시 말해 츄리닝이 참 많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나의 옷장에 츄리닝이 이렇게 많았던 적은 정말 처음이다. 서울에 살 때 아내가 아울렛에 가서 츄리닝만 보면 '옷 좀 예쁜 것 사. 왜 계속 츄리닝만 봐'라고 했던 나였는데, '편하잖아'라는 아내의 말이 그때는 정말 이해가 안 갔던 나였다. 지금도 브런치를 쓰면서 츄리닝을 입고 있지만 막상 츄리닝을 입고 일하고 츄리닝을 입고 밭에서 텃밭을 가꾸다 보니 츄리닝만큼 편한 옷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나의 상황과 환경과 직업을 대변한다는 것,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나의 사회적인 모습이 판단된다는 것. 그래서 옷을 입을 때 신경 써야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즐겨 입는 옷이 곧 나의 모습이다. 물론 입고 있는 옷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옷이라는 것은 나의 자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나도 나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즐겨 입는 옷의 스타일과 색상이 달라졌듯이 옷은 어쩌면 나를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옷. 나는 내일도 재택근무라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고 오늘 입었던 츄리닝을 다시 입을 것이다. 나에게 츄리닝은 하나하나 단추를 채워서 입었던 셔츠와 항상 벨트를 맸던 바지를 입고 출근했던 서울 직장인의 답답했던 삶에서 벗어나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과 살고 싶었던 곳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누가 뭐라 해도 츄리닝이 지금 나에게는 원픽이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쇼핑 츄리닝 검색 결과 ]




※ 츄리닝이 표준어는 아니지만 글의 전체적인 느낌을 살리고자 츄리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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