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노동조합
임금은 회사를 다니는 이유이다. 힘든 회사 생활을 견디게 하는 중독성 있는 치료제이다. 금방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월급날 입금 문자를 받고 나면 한 달을 또 열심히 노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 않는가.
노동조합의 사측과 협상에 있어서도 돈은 가장 주요한 협상의 주제이다. 돈의 위력은 가장 손쉽게 여러 사람들의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보상이라는 점에 있다. 생각해 보면 돈은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지 않은가.
조합원 개인은 각각의 애로사항을 가지고 있기에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합원 숫자만큼의 해결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도 다른 조합원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수천 가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숙제를 안게 된다.
예를 들어 육아유직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합의를 온갖 노력을 통해 쟁취했다고 하면 어떨까. 임신을 앞둔 직원들은 크게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무슨 관련이냐'라고 말하는 직원들도 많다. 남직원이나 이미 육아기를 지난 여직원 혹은 비혼 직원들이 그렇다. 심지어, 그 직원이 육아 휴직에 들어간 동안 내가 상대적으로 업무량이나 근무시간이 늘어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노동조합이나 다수의 조합원들 입장에서 훌륭한 합의도 조합원 개개인이 느끼기에는 그 효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의 호응을 필요로 하는 노동조합은 항상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최적의 도구가 바로 ‘돈’이다.
하지만 이것은 때로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조직을 분열시킨다. 노동조합 간부는 이러한 만능의 해결책 돈이 가진 효용과 함께 부작용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사측도 ‘돈’의 보편적 효용성 때문에 노동조합이 돈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사례 case.
사측안 : 개인 성과평가의 도입
노측안 : 특별보로금 1,000% 지급
박근혜 정부 때 성과연봉제의 도입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고 능력에 맞는 보상을 지급한다는 긍정적 취지를 가진 제도로 성과연봉제를 주장하여 정부주도로 공공기관과 금융권에서부터 의무도입이 추진되었다.
당시 정부의 압박이 거셌기 때문에 공공기관과 금융권에서도 사측이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개인 성과평가를 도입하고 성과에 따른 차등보상제를 실시코자 노측과 합의를 진행하다.
일부 금융권의 사측에서는 당시로는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보너스 성격의 특별보로금을 노측과의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개인 성과평가와 성과에 따른 연봉 차등제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일시에 월 급여에 5배에 달하는 보너스를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당시 노동조합 간부로서는 참으로 고민되는 사안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성과연봉제에 대한 도입의 효과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발현되겠지만 조합원들의 통장에 꽂히는 거액의 보상금은 즉시 효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노조 선거를 앞둔 조합이라면 더더욱이나 고민이 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성과연봉제의 도입은 백지화되었지만 사측의 전략은 항상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제도와 돈의 교환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제도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는 아직 입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경우도 많다. 돈은 일시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금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도와 돈이 매칭되어 결정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당장의 평가가 아니라 먼 미래에 현 조합을 평가할 때도 떳떳한지를 한 번 더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