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May 19. 2020

멈춰 서고 싶은 이유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날씨: 비, 바람, 구름, 해, 구름, 바람, 비

기록자: K


문어들의 펜시브를 훔쳐보다 실수로 떨어뜨린 생각의 파편.



계산하고 싶지 않은 숫자를 계산해야만 할 때가 있다.


2019년 9월 27일 금요일


우리 앞에 두 잔의 IPA와 한 잔의 사워에일이 놓였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그 탭하우스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한 첫인상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곳이 뽈의 직장으로 무척이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어떤 흥분과 열정이 느껴졌고, 그가 저 앞에 있는 수십 개의 탭 앞에서 완벽한 양의 거품을 남기며 맥주를 따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뽈이 추천한 신(sour) 맥주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것조차 좋은 징조로 보였다. 이곳의 맥주가 나 같은 초보에게조차 도전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뽈의 수준에 맞겠는가.


핸드폰을 살피던 동그라미는 어느새부턴가 다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을 묻자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갔다 와야겠어." 늙은 반려견 C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어서, 옆에서 온종일 돌볼 사람이 필요한 상황. "최대한 빨리 가야 할 것 같아." 우리는 뽈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에서 왕복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머니 사정에 맞게 구매할 수 있는 비행기표는 90일 내에 독일로 리턴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이미 10월로 잡혀있던 구직비자 인터뷰는 당기거나 미룰 수 없으니, 결론적으로 1월까지가 한국에 있을 수 있는 마지노선.


"리턴 비행기는 1월 20일로, 그렇게 해주세요." 퉁명스러운 한인 여행사 아주머니와의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미지근해진 맥주를 앞에 두고 소주 생각이 났다. 그런데 만약 C가 더 오래 산다면, 버텨낸다면?


2017년 봄. C와 동그라미의 산책 중.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새벽. 조용한 병실 안에는 머리를 바싹 밀어버린 내가 X의 바이탈 그래프를 보고 있었다. 휴학한 지는 한 학기째. X가 암과 항암치료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의식을 잃은 지는 반년이 좀 안된 시점. 그즈음 누군가 물었다. 복학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건 그 사람에게는 속 깊은 조언이었으되 내게는 무례한 오지랖이었다. 가망이 없어 보이니 포기하란 건가. 하지만 결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까지는 복학신청이 가능했으니까. 내게 한 학기는 별것도 아니었지만, 냉철하게 복학을 결정하는 평행우주의 K를 상상해보긴 했다. 아냐, 그럴 일 없어.


이른 아침. X는 평소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바이탈 그래프는 불안정했다. 나는 마사지를 시작했고, Y와의 프로토콜에 따라 가족들을 불렀다. 급히 가족들이 모였고, 다행히도 X는 이내 안정을 찾는가 싶었다. "아휴, 오늘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으셨나 봐. 이제 가보셔도 되지 않을까요? H도 학교 가야 할 텐데."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X의 바이탈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왔고, 곧 의사가 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X는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허망하게, 마치 스스로 계산이라도 한 것처럼. 바닥난 Y의 재정을. 고3을 앞둔 H를. 그리고 내 피폐함까지. 전부 다.


X의 마지막 손글씨 중.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 다시 누군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아직 복학이 가능하냐고. 나는 닥치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내 결심했다. 나는 복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냉철한 계산에는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설마 X의 계산, 아니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계산이더라도.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COVID-19

전 세계 (한/독) 누적 확진자: 60,387 (28/16)

전 세계 (한/독) 누적 사망자: 1,370 (0/0)

전 세계 (한/독) 사망률: 2.27% (0/0)


산림과학원 구내식당에서의 점심시간. TV 화면에는 전날 미국에서 귀국한 봉준호 사단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며칠째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고, 그건 분명 어제부로 COVID-19라는 이름을 얻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는 유쾌한 이야깃거리였다. '그래, 불안이나 공포보다는 국뽕이 나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봉준호의 작품이 전례 없는 수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게 좋은 징조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독일에서 돌아오면서부터 느끼고 있었던 한국인들의 마스크에 대한 강박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차가운 풍경, 그리고 중국인들에 대한 혐오가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잘됐네 뭐.


퇴근길. 페이스북 담벼락에 기생충과 코로나에 가려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한 뉴스가 하나 보였다. 해수면 상승과 그로 인한 대규모의 이주를 막기 위해 프랑스-영국-노르웨이를 잇는 총연장 637km의 거대한 방조제를 만들자는, 어떤 네덜란드 해양학자의 제안. 그 규모가 믿기지 않아 찾아본 논문에는 '반갑게도' 새만금의 사례가 실려 있었다. 해수면이 10m가량 상승했을 때 잠길 유럽 주요 도시의 2,500만 인구와 모든 기반시설에 비하면, 이 방조제를 짓는 것이 싸게 먹히고, 이미 존재하는, 새만금 방조제와 해양플랜트 건설에 쓰이는 기술력이면 이러한 거대한 공사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였다.


호수가 된 북해라니. 그건 4대강과 새만금이 귀여워 보일 거대한 규모의 죽은 물 웅덩이겠지만, 전 유럽 인구의 약 1/3과 암스테르담, 런던, 스톡홀름 같은 대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치를 수 있는 대가겠지. 그런데 우리, 정말 이런 것까지 필요한 상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과연 전 세계 인구 중 몇 퍼센트나 이런 장벽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100%가 아니라면, 누가 그 마지노선을 긋게 될까. 하, 봉준호 영화 같네.


https://doi.org/10.1175/BAMS-D-19-0145.1


2020년 3월 12일 목요일


COVID-19

전 세계 (한/독) 누적 확진자: 130,783 (7,869/1,567)

전 세계 (한/독) 누적 사망자: 4,920 (66/3)

전 세계 (한/독) 사망률: 3.76% (0.82/0.19)


출근길. 더욱 한산해진 지하철 6호선. 나는 열차에 들어서자마자 핸드폰에 얼굴을 처박고 이른 아침부터 쓰고 있었던 메시지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그건 동그라미에게 보내는, 독일에 돌아가서 취직을 준비하려던 계획은 취소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요지의 긴 메시지였다. 그렇게 막상 보내고 나니, 괜한 말을 했나 싶기도 했다. 나 또한 오래 떨어져 있을 자신이 없어서. 우리의 계획에는 물론 많은 동기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전날 있었던 WHO의 판데믹 선언과 세종시 공무원 확진으로 인해 공무원 집단인 산림과학원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상황이 이런데 예정대로 독일에 돌아갈 수 있겠어요?" 원래 3월 19일 출국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인천-프랑크푸르트 직항편의 운항 중지로 인해 이미 내 표는 3월 22일 출국하는 암스테르담 경유 노선으로 바뀐 상태였지만, 과연 이 표가 그때까지 유효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글쎄요. 이젠 저도 모르겠어요."


오후에는 인수인계를 위한 발표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지난 50여 년간 홍릉숲의 개화일은 10일 정도 빨라졌고, 이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 경향은 꽃이 빨리 피는 수종일수록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고요." 발표가 끝나고, 실장님의 걱정이 이어졌다. "개화일이 빨라지는 거야 사실 다들 알고 있는 거고, 중요한 건 이 변화와 화분매개곤충들의 활동 시기 사이의 얼마만큼의 불일치가 있냐는 거죠." 아직 분석할 게 많으니 일정에 변동이 생기면 일 좀 더 하고 가라는 실장님의 조심스러운 제안. 그러게요, 저도 벚꽃을 보고 싶기는 한데.


2017년 봄. 수목학 수업 중.


2020년 5월 17일 일요일


COVID-19

전 세계 (한/독) 누적 확진자: 4,534,731 (11,050/174,355)

전 세계 (한/독) 누적 사망자: 307,537 (262/7,914)

전 세계 (한/독) 사망률: 6.78% (2.37/4.54)


동그라미의 생일까지 한국에 남아있게 된 사실을 얼마나 긍정할 수 있을까. 분명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소중한데, 그 대가는 한 사람이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저 숫자 몇 개로 감히 더듬거릴 뿐. 하늘은 맑아졌고 동물들이 돌아왔으니 좋은 점도 있다고? 그게 설마 사실이라고 해도, 떠난 이들 앞에서 무슨 소리야 그게.


그래도 '위대한 자연의 회복력'이라니,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들린다. 정말 사실일까? 누운 자리에서 킬링 곡선을 확인했고, 더욱 깊이 우울해졌다. 그건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감정. 섣부른 의미부여 말고 조용히 애도하고 싶고, 지금 옆에 있는 이들에게 더욱 사랑을 표현하고 싶고, 멈춰 서고 싶은 이유.


오랜만에 편지를 쓰고 꽃을 샀다. '생일 축하해!' 그리고 독일행 비행기를 끊었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2018년 봄. 동그라미의 생일파티 중.


매거진의 이전글 기대고 싶었던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