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동해안 여행 묵호 편
7번 국도 여행에 대한 꿈은 꽤 오래된 것이었다. 7번 국도는 부산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까지 연결되는데, 포항에서 강원도까지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쭉 해안가를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까지 올라간다니, 어린 시절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언젠가 차가 생긴다면 꼭 여행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천천히 동해안을 따라가는 그 여행길에 마침내 오르게 된 것은 '7번 국도 여행'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접한 후 수년이 흘러 서른한 살이 되어서였다. '내 차'가 생길 만큼 어른이 되고 나니 여행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여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있었다. 특히나 직장인에게 5일 이상의 여유가 생긴다면 해외여행부터 생각이 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여행이란 언젠가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 하는 오래된 꿈 하나를 실현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과거의 어떤 날 - 내가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한 날 - 내게 언젠가는 7번 국도를 따라 여행할 순간이 올 것임은 필연이 되었던 것이고, 그때가 서른한 살의 가을날에 문득 찾아온 것뿐이라고 해야겠다.
돌아오게 되는 곳, 돌아갈 수 없는 시간
- 묵호
살아가면서 몇 번쯤 다시 찾게 되는 곳, 혹은 다시 찾을 날을 기다리게 되는 곳들이 있다.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가슴에 품고 사는 지난 여행의 기억이 만들어진 장소가 내게는 그렇다. 이제는 꽤 오래 전인 20대 초반에 나는 여러 번 '내일로'를 다녀왔다. 생전 처음 '나 홀로 여행'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을 만들어 갔던 스물세 살에도, 세 번째 내일로였던 스물네 살에도 강원도를 다녀오게 됐다. 전국 일주에 가까웠던 내일로를 통해 여러 도시를 다녔지만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곳은 동해의 묵호였다.
좀처럼 더위가 가시질 않던 8월의 끝자락이었다. 나는 세 번째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고 다음 목적지를 확정하지 않은 채 강릉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묵호에 가기로 했다. 강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고, 가보지 않은 곳이었고, 기차역이 있어 내일로 티켓으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진으로 본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 이유면 다음 목적지로 충분했다.
철저한 계획 아래 방문했던 곳보다 문득 끌려서 즉흥적으로 찾아간 장소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명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많은 것을 미리 알아보면서 기대감을 키우는 과정이 없어서 일수도 있고, 혹은 내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세심히 내리는 결정보다 직관적인 감을 따르는 게 결과가 더 나은 유형의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갈 수 있으니까, 묵호는 가보면 좋을 것 같아' 정도의 직관을 따른 일은 아주 잘한 일이 되었고, 당시에 미리 방문하기로 결정했던 다른 도시들보다 여운이 길게 남은 여행지가 됐다. 그때의 여행에는 관광지라 할만한 별다른 장소도 없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가파른 언덕을 따라 생긴 작은 마을을 걷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커다란 거실이 있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숙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묵호항의 밤풍경을 바라봤던 일, 그 여름밤에 마셨던 시원한 캔맥주, 그리고 언젠가 눈 내리는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까지, 아직도 가끔은 그 모든 것들이 마음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8년 만에 다시 찾은 묵호는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 카페나 기념품 가게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고, 날씨가 좋은 연휴여서인지 관광객도 많았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고작 하루 머물다 떠날 여행자로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왠지 많은 것이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변해가는 모든 것들을 원망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것도 왠지 알듯했다. 사람은 언젠가 과거의 장소로 돌아갈 수는 있지만, 추억으로 남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은 그처럼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연습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