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카즈베기 가는 길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설산과 드넓은 푸른 초원이 한눈에 보이는 풍경, 그 어딘가에 홀로 서 있는 오래된 교회의 모습, 카즈베기를 상징하는 그 한 장의 사진이 여행자를 조지아로 불러들이고는 한다.
그 풍경을 찾아서 떠나는 길.
조지아 여행기
- 카즈베기 가는 길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이동하는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조지아를 대표하는 대중교통인 마슈로카('미니 버스'정도라 할 수 있다)를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마슈로카를 이용하면 십 라리(한화 약 오천 원), 택시를 이용하면 백이십 라리(약 육만 원)쯤 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의 장점은 확실했다. 조지아는 한국과 비슷하게 계절이 지나가는데, 마슈로카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초여름의 날씨에 세 시간 이상이 걸리는 이동시간을 작은 버스에서 에어컨도 없이 보내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택시를 이용할 경우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가는 길 곳곳에 위치한 명소에서 잠시 내렸다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유명한 포인트는 진발리 호수, 아나우리 성채, 구다우리 요새 세 곳이었다. 동행을 몇 사람만 구해서 비용을 조금만 나누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으로 느껴졌다.
그리하여 트빌리시에서 동행을 구하게 됐다. 택시를 공유하게 된 다른 두 사람은 친구 사이로, 일정이 촉박해 카즈베기의 명소 룸스호텔까지 차로 이동한 다음 식사를 하고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미리 예약해 둔 택시 비용의 일부를 분담하고, 카즈베기까지 편도 일정만 동행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하여 혼자 여행하는 나와 친구 사이인 두 사람, 그리고 키가 몹시 컸던 조지아인 택시기사 네 사람이 함께 카즈베기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트빌리시를 떠나던 이른 아침, 약속 장소인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연식이 몹시 오래되어 보이는 프리우스 한 대가 들어왔다. 나는 좁은 트렁크에 커다란 캐리어를 싣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키가 백구십 센티미터쯤 되어 보였던 운전사는 친절했지만 여느 조지아인과 마찬가지로 운전 스타일이 상당히 거칠었다. 조지아에서 택시를 타면 어느 곳에서나 레이싱이 펼쳐지고는 했다. 왕복 2차선의 도로에서 역주행은 몹시 흔하게 이루어지는데, 마주 오는 차와의 간격이나 속도가 아찔한 순간이 흔했다. 차량이 달리고 있는 두 개의 차선, 그 사이로 추월이 이루어지는 짜릿한 순간도 조지아의 택시를 통해 즐길 수 있다.
낡은 프리우스가 선사하는 생과 사를 오가는 듯한 드라이브에 익숙해질 때쯤, 도시의 풍경이 꽤 멀어졌다고 느껴지는 곳에서 차가 멈춰 섰다. 진발리 호수에 도착했으니 십오 분쯤 둘러보고 출발하자는 것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여러 기념품을 파는 잡화점 뒤로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푸른 산 사이로 에메랄드 빛을 발하는 잔잔한 호수와 그 위로 뭉게구름이 지나가는 모습, 그야말로 청량한 풍경이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가 함께 실려 나가는 듯했다.
농담도 잘하고 운전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프리우스의 운전자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은 진발리 호수를 떠나고도 한 시간쯤은 더 도로를 달린 뒤였다. 시속 백 킬로미터 이하로는 운전하지 않을 것 같던 그는 이제 시속 오십 킬로미터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계기판에 들어온 경고등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떨어진 속도만큼 웃음을 잃은 드라이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에 문제가 생겨서 카즈베기 까지는 못 가요. 구다우리까지만 갔다가 돌아갑시다. 돈은 안 받겠습니다.”
기사는 예약된 일정을 확인하고 승객 세 사람이 모두 당일에 트빌리시로 돌아올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당황한 동행이 손짓으로 조수석을 가리키며 카즈베기까지는 가야 한다고, '마이 프렌드 해브 투 고 카즈베기'라며 기사에게 말했다. 내가 카즈베기에 숙소를 예약했고 며칠은 머무르다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하자 그는 눈에 띄게 다급해졌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가 시동을 다시 걸기도 하고, 이곳저곳 전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방법을 찾지 못한 듯했고, 결국에는 구다우리까지도 가지 못할 상황이라고 말하며 어느 곳인지 파악할 수도 없는 위치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 바로 트빌리시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더 갈 수가 없습니다.”
원래 목적지였던 카즈베기의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는 고도 약 천칠백오십 미터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남은 구간은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조수석에서 앉아서도 오래된 자동차가 더 이상 그 높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카즈베기 근처에는 차량을 정비할 수 있는 인프라도 없다고 차를 세운 기사가 말했다.
심각한 표정이었던 그는 애써 웃으며 나에게 지나가는 마슈로카를 잡아 타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말이 쉽지. 그리고는 구글맵을 실행했다. 이미 트빌리시를 떠나 두 시간을 넘게 차로 이동한 상황이었으므로 여차하면 남은 거리는 걸어갈 생각이었다.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걷는 일에는 자신 있었다. 목적지로 스테판츠민다 마을을 설정하고 도보이동 시간을 확인하니 '12시간'이 표시됐다. 걸어갈 수 없다는 것과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자연, 어느 산골에 멈춰 섰다는 것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구글맵을 끄고 콜택시 앱을 실행하니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이 없다는 문구가 표시됐다.
아, 또 시작이네.
"어쩐지 이번 여행은 너무 별일이 없더라고요."
당황인지 황당인지 혹은 둘 다인지, 난감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동행 두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는 기사 옆에 나란히 섰다. 곧 마슈로카 한 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장신의 프리우스 운전자는 그 긴팔을 뻗어 빈자리 하나가 있냐는 의미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고 - 그 모습은 마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이언맨을 향해 검지를 들어보이며 지금 이 상황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암시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 버스 기사는 손을 저었다. 트빌리시에서의 기억을 돌아보면 그럴 만도 했다. 마슈로카는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빈자리가 있으면 출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빈 좌석은커녕 짐을 둘 곳도 넉넉하지 않을 정도로 차량의 공간을 가득 채운 다음에야 마슈로카가 출발하는 것이 이 나라의 방식인 듯했다.
마슈로카 몇 대가 더 지나쳐 갔다. 조금 막막하긴 했지만 두려운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여행의 경험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명확한 사실인 동시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억지로라도 되새겨야 하는 문장이었다. 지난 숱한 여행 속에서 그 사실을 몸소 배워야 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어려움을 겪은 그 시간이 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오래 남는 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여행은 늘 내게 말해 왔다. 길을 잃어버린 순간조차 추억이 될 거라고. 더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그 이름 모를 장소에서, 하염없이 나를 태워줄 차량을 기다리며 바라보았던 조지아의 풍경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은 분명했다.
그 상황이 두렵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누구도 나를 두고 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동행한 두 사람에게 어떻게든 해결될 테니 먼저 트빌리시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틀 뒤면 조지아를 떠나야 하는 두 사람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히치하이킹을 시도 중인 택시 기사도 나를 여기 혼자 두고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내가 잘못해서 마주한 상황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그 낯선 곳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무척 고마웠다. 그 짧은 인연을 통해 삶에는 누군가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되는 순간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던 중 마침내 지나가던 마슈로카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택시 기사가 조지아어로 마슈로카 기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듯했다. 나는 옆에서 절박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마슈로카 운전자는 곧 타라는 손짓을 했다. 급히 동행과 택시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마슈로카에 올라탔다. 전혀 사람이 타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서 먼 나라의 이방인이 버스에 오르니 모두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목이 집중되는 바람에 나는 무어라도 말로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마이 카 이즈 데드"
운전석 옆에 서서 모든 승객이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렇게 외쳤다. 여러모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그 짧은 영어를 내뱉는데 마치 연극무대에 서서 대사를 내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맨 뒷자리까지 걸어가는 동안 모두가 한 마디씩 건넸다. 오 마이 갓, 아임 쏘리 투 히얼 댓 등등. 갑자기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그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은 우연한 인연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그때 그 마슈로카에서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외국인 둘과 친구가 되어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은 일 또한 조지아 여행을 기억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내게 기억에 남게 됐다.
깜짝 이벤트로 잠깐 떠들썩했던 버스가 잠잠해진 다음에야 나는 창 밖의 풍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푸릇푸릇했던 풍경 사이로 어느덧 눈에 뒤덮인 설산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실시간으로 기온이 낮아지는 수준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여름의 트빌리시를 낡은 프리우스를 타고 떠나오며 시작한 여행의 하루는, 차량의 고장으로 한껏 열이 오른 다음 카즈베기를 향하면서 다시 조금씩 온도가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계절이 흘러가는 듯 변해가는 풍경을 지나 마음도 다시 차분해질 때쯤, 오래 기다렸던 목적지 스테판츠민다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슈로카에서 내리니 한결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따라 다시 새로운 여행길이 펼쳐져 있었다.
카즈베기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