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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미술관 Nov 01. 2020

함께 힘을 보탠다면

2019년 11월 21일


요즘 논문을 쓴다고 가급적 동선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을 하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 '집중'이 잘 안된다. 집중을 하는가 싶으면 눈이 침침해져 졸리기도 하고, 공부는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찌보면 다 핑계이고 고비를 넘는 힘이 약한 것 같다.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한참 바쁘신 분인데 급하게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수락해주시는가 하면 힘들 때 혼자만의 비밀무기를 알려주신 분, 설문도 더 돌려주시겠단 분도 계시니...아, 이런 후의에 몸둘 바를 모르겠으며 나는 평소 연구자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반성한다.

이번에 국내 미술관들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 바는, 소장품이 빈약하니 상설전시 없이 기획전시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에듀케이터들은 "(기획)전시 연계" 라는 부분에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부분은 큐레이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사들은 교과과정 연계를 위해서라도 상설전시를 선호하는데 우리는 서구 미술을 소개하거나 최근 이슈를 전달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축적된 연구와 경험이 부족하고 에듀케이터의 해석 역량도 쌓일 수가 없다.

또 하나는 미술관 교육에서는 그간 미술 교육을 그다지 많이 참조하지 않는다. 미술사나 미술이론이 중심이었고 창의력, 감상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단지 보기 좋게 쓰여질 뿐 어떻게 창의력을 발현시키고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공유하고 있지 않다. 미술교육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교육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미술관 교육을 미술교육의 그 한 부분으로 보지만 과연 미술관 교육은 그 일부분일까. 국내에서는 교육대학에서 미술교육을 많이 연구하니 어린이에 집중하게 되는데 사실 성인, 노인 등 더 다양한 미술교육 연구는 미술관 교육과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86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섭외교육과가 생겼을 당시 미국에서는 미술관의 교육과 에듀케이터들의 "불확실한 직업" 위상을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와 이슈들이 가열차게 논의되었다. 30년 동안 우리는 미술관도, 교육의 중요함도 알고는 있지만 내부적인 조직, 정책, 자원 등의 문제는 얽힌 실타래 같다. 근본적으로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구분이 미술박물관으로서 박물관 내에서 과학박물관, 역사박물관 등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미술관의 독자성을 추구했어야 하는데 미술관만 따로 있다보니 기관 운영에 있어서는 이제 발걸음을 떼는 것 같다. 물론 박물관 연구자들 중에는 그것이 장점이라고도 하는 분도 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장점이라고 보기만 해서 장점이 되지 않는다. 함께 해결해보자. 우선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은 큐레이터이든, 에듀케이터든, 작가이든, 도슨트든, 그리고 학교 교사들까지 힘을 보탠다면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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