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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루 Jan 06. 2024

조율 한번 해주세요

제1화 살다보면 조율이 필요한 때가 온다.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전문가가 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안하는 TV 프로그램이 한참 인기를 끌고 있던 무렵이었다. 나는 그즈음에 회사를 다니다가 공황장애로 휴직 중인 분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치료 중에 한참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화가 나요. 저렇게 쉽게 치료가 된다고요? 그러면 매주 병원에 와서 약 타먹고 상담받는 저는 뭐냐고요."


웬만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반갑기는 했다. 그래도 화는 화를 내야 하는 번지수를 잘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방향을 조정해 보고자 이렇게 답했다.


"방송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니까 그런 부분을 감안하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니 누군가는 쉽게 치료되는데 나는 이렇게 애를 써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화도 나나 보네요."라고.


이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잠잠해지시는 분을 보면서 나는 이 분의 공황장애가 머지않아 고쳐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이 분은 몇 달간 집중적으로 성실하게 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회사로 복귀했다. 빨리 호전된 성공적인 경우였다. 조율이 잘 될수록 마음을 고치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 않다. 어떤 마음은 고치기가 상당히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그리고 마음을 어떻게 고치는 가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졌다.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문제 해결 중심의 맞춤 솔루션 상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마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부터다.


마음을 고치는 사람으로서  심리상담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바라보면 두 가지가 마음이 든다. 하나는 "사람들이 마음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는 반가운 마음, 또 하나는 "이게 다가 아닌데."라는 아쉬운 마음이다. 반가움과 아쉬움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나는 대체적으로 심리상담  TV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다행스럽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분명 힘이 된다.


마음이 병드는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가족력, 성격문제, 중독취약성, 관계갈등,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병을 만든다. TV 프로그램에 보여주는 문제 해결 중심의 맞춤 솔루션 제안 상담이 마음을 고치는데 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현대인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기는 혼란(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자율신경계 혼란)으로 인한 마음의 병은 문제를 분석해서 해결책을 내는 것으로는 고치기가 어렵다.


앞에서 이야기한 공황장애로 상담실을 찾아왔던 내담자가 그런 경우였다. 이 분은 성격문제가 있기는커녕 훌륭한 인품에 모범이 될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도 마음의 병이 생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기에 한 사람의 삶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문제가 나오고 거기에 맞는 해결책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으로 치료되지 않는 병들이 있다. 나는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 현대인들에게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는 정신장애들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서,  한 사람 안에 고쳐야 하는 취약성이 많다기보다는 외부에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음은 상황에 맞춰서 에너지를 조율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지면 그 기능에 혼란이 오고 조율 능력을 상실한다. 그 결과가 위에서 언급한 마음의 병들이다. 오늘날 지구에서 문명인으로서 생명을 부지하면서 살려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살다 보면 마음의 조율이 필요한 때가 적어도 한 번은 오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이 생겼다고, 공황장애가 생겼다고 당신에게 꼭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이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고치려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분석해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고, 조율기능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조율, 조율기능의 회복이다.





마음을 고치는 작가 안블루

정신건강의학과 조이의원 협력센터인 심리상담센터 위드제이에서 수석상담사로 근무하며 정서장애, 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심리치유 에세이 <조율 한 번 해주세요>를 통해서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조율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과정을 브런치에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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