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장 5절
이 글은 기독교 건강선교잡지 『건강과 생명』에 기고한 “정신과 상담실 –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나를 반복적으로 상처 주고, 나의 마음을 해치는 관계에 대해서, 상담실을 찾아본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 그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야 해요." 더 나아가 "정신건강을 위해 관계를 끊는 것도 생각해 봐요."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심리적 경계 (psychological boundary)를 세우는 일입니다. 자신을 지키고 회복하는 데 꼭 필요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어려운 지점을 마주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고 그다음 구절들은, 예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마음.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람, 도무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선하지 않고, 그렇게 온유하지도 못한데 말이죠.
믿는 사람들은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요?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갈등합니다. 심리학은 말합니다.
"나를 해지는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회피나 단절이 필요할 수도 있다."
반면, 말씀은 말합니다.
"오히려 더 사랑하다. 더 오래 참아라. 용서하고 품으라."
이 둘은 충돌하는 걸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그 힘이 나의 선함이나 인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죠.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능력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덮고, 나를 회복시킬 때, 비로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의 경계는 다르게 세워집니다.
우리 내면에는 의롭고 싶어 하는 자아가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참았어." "나는 저 사람보다 착해" "나는 용서했어. 너는 왜 못 해?"하지만 이 방식의 용서는 결국 또 다른 방식의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나를 지키다가 오히려 지쳐 무너지는 경우보 많습니다. 겉으론 경계를 잘 지킨 것 같아도 속은 여전히 분노와 수치, 억울함으로 가득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 힘으로 용서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데, 우리들은 이 것을 잊고 자꾸 우리 힘으로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내 힘으로 용서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사랑과 지혜를 구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사랑으로 우리를 먼저 덮어주셨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다기 누군가를 품을 수 있도록 길을 내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시 옛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리를 증오나 단절의 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품는 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과의 거리 속에서 나는 더욱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분 안에서 충분히 위로받고 회복되어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 경계를 지키면서도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은 단순히 예수님처럼 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초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는 내가 고귀한 사람이 되어서 타인을 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가능한 그 마음, 그 사랑이 나를 덮을 때, 나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조차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나는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도, 마음은 열 수 있는 예수님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나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심어준 가족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해도 마음이 편할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
상대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렇다고 단절이 완전한 해답은 아니라는 직감이 든다는 분들을 만날 때, 저는 그 사람과의 마음의 거리를 우선 조절해 보자고 합니다. 당장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도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조절하는 사이에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 관계 속에서 저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신앙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용서해야 할 누군가가 떠오르나요? 하나님께 의지하고, 구해 보세요.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덮을 때, 우리도 비로소, 사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