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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케이 Feb 07. 2017

20만 원으로 구현해본 스마트 홈

아주 작은 혁신의 시작

최근 4차 산업 혁명이 연일 언론과 정치인들 입에서 오르내린다. 4차 산업 혁명을 안 하면 이 나라 모두가 다 망할 것 같다. 아니, 너무 늦어서 이미 망한 건가라는 느낌적 느낌도 든다.

사실 그 내용은 맞다 -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기술 혁신에 못 따라가면 뒤쳐지고 망한다. 나라건 기업이건. 다만, 정작 그런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들은 "4차 산업 혁명"이란 용어를 쓰지도 않고 작은 기술 혁신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플랫폼과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4차 산업 혁명이란 거창한 용어와 계획을 쏟아 내는 게 걱정될 뿐.


그.래.서.

내 주변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IoT를 적용한 스마트 홈 Smart Home 구성. 마크 주커버그가 집에 구현했다는 자비스를 우리 집에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https://brunch.co.kr/@playfulheart/50

스마트 홈을 구성하기 위해 관련 상품을 검색해보았다. 비싸다, 너무 비싸다. 스마트 조명의 대표 주자인 필립스의 휴도 비싸고, 스마트 보일러의 원조인 네스트도 비싸다. 우리 집 조명, 스위치, 보일러는 예전 아날로그 방식이라 바로 디지털로 연결하려면 컨트롤러도 모두 바꿔야 한다.  통신사에서 나오는 IoT패키지들은 매달 요금이 들어간다.

머릿속에서 그렸던 큰 그림 - 집의 모든 조명과 전기 기기, 보일러, 가스레인지 등을 모두 스마트하게 조정하는 -을 구현하려다가는 파산할 지경이다. 너무 큰 그림을 계획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 하는 4차 산업 혁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작게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7시, 음악 소리에 잠이 깼다. 누운 채로 음성으로 지시한다. 알람을 끄고, 스탠드 조명을 켜고, 클래식 음악 라디오를 틀고 출근 준비를 한다. 어? 이 노래 좋은데 하며 어떤 노랜지 물어보면 누가 연주한 어떤 제목의 음악인지 얘기해준다. 옷을 입으며 오늘 날씨와  할 일을 확인한다. 내가 집에서 나가면 자동으로 스탠드는 꺼진다.

저녁에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 날씨가 더워서 시원한 집에 들어가고 싶다. 스마트폰을 열고 에어컨을 켜놓는다. 집에 들어오면 TV와 셋탑박스가 자동으로 켜지며 JTBC 뉴스를 보여준다. 뉴스를 본 후 'TV 꺼줘"라고 얘기하면 TV와 셋탑박스가 모두 꺼진다.

잠자리에 누운 후, 음성으로 다시 명령을 내린다. 에어컨 끄고 방의 스탠드를 끈다. 그리고 30분 동안 영어 공부 팟캐스트를 틀어달라고 한다. 잠드는 데엔 30분도 안 걸릴 테니.


작게나마 구현을 완료한 스마트홈 일상이다. 지어낸 시나리오가 아니라 구현된 그대로이다. 한국어가 아니라 간단한 영어로 해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위 시나리오에서 사용된 Alexa 음성 명령

"알렉사, 알람 꺼" [Alexa, stop]
"알렉사, 스탠드 켜" [Alexa, trigger room light on]
"알렉사, 판도라에서 클래식 음악 좀 틀어줘"
[Alexa, play some classical music from pandora"]
"알렉사, 오늘 날씨는?"[Alexa, what's the weather like today in Seoul?]
"알렉사, TV 꺼줘" [Alexa, turn off the tv]
"알렉사, 에어컨 꺼줘" [Alexa, turn off the aircon]
"알렉사, 스탠드 꺼" [Alexa, trigeer room light off]'
"알렉사, 30분 후까지만 틀어줘" [Alexa, set a leep timer for 30 minutes]


위 시나리오의 스마트홈을 구성하는 데 총 2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아마존 에코 닷 Echo dot - 6만 원

Alexa로 불리는 음성 인식 블루투스 스피커. 한국어는 인식을 못하는 바보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제대로 있는 버전은 가격이 비싸기에 저렴한 스피커가 들어간 에코 닷을 구매하고 기존의 스피커와 AUX로 연결했다. 아마존 직구.


샤오미 Xiaomi 스마트 전구 2개 - 3만 원

필립스가 비싸게 느껴진다면? 우리에겐 샤오미가 있다. 조명의 색까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등도 있지만 일반적인 흰색 등도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1개에 1만 5천 원 정도에 구매 가능.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일단 주문해놓으시길. 알리는 배송료가 무료인 만큼 아아아주 한참 후에 배송된다.

샤오미의 전용 앱으로만 제어할 수 있다는 단점은 작년에 IFTTT에 연동되면서 사라졌다.


로지텍 하모니 허브 Logitech Harmony Hub - 11만 원

흔히 말하는 디지털 혁신, IoT,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할 때 기존의 기기들의 활용이 큰 장벽이 된다. 모든 기기와 설비를 새로 살 순 없다. 스마트 홈을 구현하기 위해 TV, 셋탑박스, 에어컨, 오디오 등을 모두 디지털 버전으로 새로 구비할 재력과 의지가 있다면 물론 상관없겠지만.

로지텍 하모니 허브는 기존의 TV, 오디오, 셋탑박스, 에어컨 등 적외선 방식의 리모컨 신호를 송출한다. 거의 대부분의 TV, 오디오, 셉탑 박스 등의 데이터를 모두 가지고 있어 셋업도 아주 간단한다. 집의 무선 랜에 연결하고 해당 모델을 선택하면 끝. 여러 기기를 한 명령어로 모두 조작 가능하다. 예를 들어 'JTBC'라는 한 명령어로 TV와 셋탑박스를 켜고 채널은 JTBC, 볼륨은 10이라고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IFTTT.com

If this then That. 직역하자면 "만약 이거라면 저거 해" - 즉, 이러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저러저러한 일을 하라고 조건을 줄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이다.  아마존 에코의 Alexa가 스마트홈 플랫폼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마트 기기들이 아마존 플랫폼에 호환되기는 하지만, 아마존과 다른 진영의 서비스들이나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iFTTT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위치정보와 샤오미 스마트 전구를 연결할 수 있다. 나는 가족들이 집 위치에 들어서면 거실 등이 켜지도록 구성했다. 이 구성을 스마트폰의 IFTTT 앱에서 1분이면 만들 수 있다.


우선 이렇게 구성해놓으면 앞으로 이 플랫폼을 활용해서 구성할 내용은 무궁무진해진다. 새로운 스마트 전구를 추가할 수도 있고, 스마트 플러그도 달 수 있다. 구글의 크롬캐스트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4 같은 멀티미디어 기기도 스마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아, 기기가 늘어날수록 강해질 아내의 등짝 스매싱을 참아낼 정도의 인내력은 물론 있어야 한다. 플레이스테이션 광고에도 나왔듯, 허락받는 것보다는 용서받는 게 더 쉬우니깐.



4차 산업 혁명으로 없어질 직업 100선 같은 제목이 어디서나 보이는 세상. 뒤처지기 전에 혁신과 변화를 내 주위에서 작게나마 시작해봐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스마트 홈을 저렴하게 구현해봤다. 20만 원을 들였는데 기존에 하던 것과 뭐가 그리 다르냐는 질문을 듣는다. 맞는 얘기다. 스마트폰 열어서 음악 틀면 되고 움직여서 전구 끄면 되고, 리모컨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면서 버튼 많이 누르면 된다. 당장은.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같은 질문들을 했다. 기존 PDA에 전화 모듈 붙여서 쓰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할 수 있는 일은 똑같지 않냐고.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과 탄탄한 플랫폼이 결합되면서 사람들의 생활을 바꿔 왔다. 사실 음성으로 명령하는 스마트홈이 다음 혁신 플랫폼이 될지 아니면 더 나은 사용자 경험으로 가는 과정일 뿐인지 아무도 모른다.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이 당초 예상만큼 시장에서 많은 호응을 받고 있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스마트홈을 만들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이 과정에서 쌓이는 것들이 다음 혁신의 토대가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핸즈온(Hands-on)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페이스북과 브런치에서 혁신에 대해서 읽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완벽한 계획 전에 작게나마 구현하는 혁신들, 그리고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 가치를 100%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건 중학교 2학년 딸이 스마트 홈을 가지고 같이 노는 과정에서 기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 작은 경험들이 나중에 딸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뿐이다.

요즘 딸과 나는 라즈베리파이와 파이썬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알렉사를 라즈베리파이에 구현하여 작은 로봇을 음성으로 제어하는 것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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