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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케이 Sep 09. 2018

사내 정치로 길을 잃은 당신에게

We are all lost since November 2016.

얼마 전에 알게 된 한 미국인 친구, 한국에서 대학을 다녀 한국말도 잘하는 터라 서로 영어와 한국말을 제 편한 대로 섞어 쓰며 같이 일하고 있다. 하루는 미팅을 하기 위해 찾아간 고객 회사 건물이 꽤 넓어 둘이 헤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거 길을 잘못 들은 듯싶다고 얘기하자,

We are all lost since November 2016. 
2016년 11월 이후, 우린 모두 길을 잃었잖아.

갑자기 이 무슨 개똥철학 같은 얘기야? 물었더니 미국인들이 즐겨하는 농담이라며 씁쓸히 웃는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달. 

아하. 하하. 미국인들을 놀려 줄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우리 한국인들은 트럼프 너무 좋아, 재선 시키고 싶어, 노벨평화상 받게 해줘야지 3종 세트를 쏟아내니 이내 붉으락 푸르락이다. 왜냐고 따져 묻는 그 친구에게 조근조근 대답해주었다. 

트럼프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끔찍하게 느낄지  알고 있어 하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이만큼이나 진도가 나가게 한 건 트럼프 밖에 없었어 우리로서는 지금 트럼프가 계속 한반도의 평화를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응원할 수밖에 없어 하고 이유를 설명하니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부은 표정은 감추지 못한 채로.

도널드 트럼프  ^^;;


조용히 일만 하며 살고 싶은데 직급이 올라가면서 줄을 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이도 있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줄을 잘 대서 올라가는 꼴 보기 싫어서 퇴사하는 이들도 있고. 이렇게 부정적인 케이스들을 뭉뜽그려 흔히 사내정치라고 얘기하곤 한다. 그럼 진짜 사내 정치는 직장 내에서 악이고 결국은 회사를 망하게 할 나쁜 관습일 뿐일까. 우리나라는 정치인들만 잘하면 좋은 나라라는 자조 섞인 말들이 회사 안에서도 해당되는 걸까.

 

사내 정치는 관점과 그 관점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

트럼프가 자신들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부끄러워하는 미국 친구에게 우리는 남북한의 평화를 위해 트럼프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우리. 트럼프라는 하나의 사람, 하나의 현상을 두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호불호와 견해가 갈린다.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와 그 미래를 실현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그 사람을 지지하고 미래를 가져올 행동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정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자신의 업무, 회사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한 태도도 생각도 모두 다르다. 물론 회사의 최고 경영자나 소수의 보드 멤버들이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고 가이드라인을 내리겠지만 회사에서는 오히려 개인이 그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사회에서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은 아주 극소수지만 회사에서는 직급이 올라가고 팀을 맡으면서 자신이 그 역할을 작게나마 할 수 있으니. 

결국 정치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다.


위를 향하는 커뮤니케이션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혼자는 너무 작기에 같이 뜻을 하고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집단을 넓혀서 실현할 힘, 즉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 정치. 

이는 본질적으로 회사에서도 같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현실에서는 비록 정당 내 권력 구조 서열이 많은 것이 결정되기는 하지만 시민들의 다수결이 권력을 가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

회사에서는 민주주의처럼 다수결로 권력이 결정되지 않는다. 회사에 자금을 대는 주주들, 그 주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회장/사장과 이사회. 그리고 그로부터 내려오는 직급과 조직 체계가 그 권력을 가진다. 재벌 구조에서는 그 시작이 오너 일가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주주가 힘을 가지는 글로벌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사내 정치의 비극이 시작된다. 결국 자신이 생각하고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직 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평가 기준은 업무와 능력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정치는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람. 일만이 관계의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맞으면 더 좋고 자기가 친한 사람이면 감정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도 매니저, 임원과 경영진이 인정해주지 않고 생각이 다르고 스타일이 안 맞으면 그건 어쩔 수 없다. 맘에는 안 들지만 수긍할 수밖에.

만약 그 상황을 극복하고 싶다면?  매니저와 업무 스타일을 맞춰 나가고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기회 되는 대로 드러내고 어필해야 한다. 사내 정치는 나와 나의 능력과 생각을 알리는 행동들이다. 그 과정에서 싱크를 맞추기 위해서 식사, 술, 골프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업무와 능력에 기반해야 한다. 술과 아부로 자신을 알리는 건 그저 잠깐이고 결국은 자신을 갉아먹을 뿐.

정치인들이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하고 자신을 향한 욕도 참아 넘기고 자신이 한 일들을 널리 알리듯이. 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침소봉대가 좌우명인가 헷갈릴 정도로 자신의 업적을 부풀리는 정치인들은 여기서 물론 제외.

글로벌 회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일이 맞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자신의 후임으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더 잘해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결국 일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것이기에.


 나 자신의 일, 내가 하고 싶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싶다면? 관련된 의사 결정을 내가 하고 싶다면? 그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 승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사내 정치를 해야 할 때다.

문제는 일 잘하고 업무 스타일이 맞는 사람은 뒷전으로 하고 자신에게 잘하는 한량, 자신에게 쓴소리 하지 않는 아부꾼들을 승진시키고 연봉 올려주는 그분들이다. 이 분들은 대물림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그렇게 계단을 올라갔기에 자신과 같은 부류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이런 분들이 자신의 매니저라면? 두 가지 길이 있다. 그 사람에 맞추어 아부를 하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그저 현상태로 조용히 일을 하며 사는 방법.
물론 다른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그 매니저를 그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마키아벨리적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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