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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케이 Feb 14. 2021

기호학의 미궁 - 장미의 이름 by 움베르토 에코

옛날의 장미는 오직 이름으로만 남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움베르토 에코께서 암으로 별세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벌써 5년이 되어 가네요.


움베르토 에코



193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기호학, 철학, 역사학 그리고 미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면서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 교수를 역임했지요. 엄청난 독서량과 끝을 알 수 없는 지식을 가진 천재.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비판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인 성향의 인간적인 면까지 가져 저를 포함한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였습니다.  어디로 ? 중세.


움베르토 에코의 첫번째 소설인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
1980년 여자친구의 권요로 집필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중세에 대한 무지막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호학, 논리학, 신학, 경험주의 철학이 때로는 서로 싸우고 어떤 때는 대화를 나누며 어우러지는 지식백과 같은 소설입니다.  중세의 수도사 윌리엄과 아드소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둘러싸고 한 수도원을 무대로 수도사들의 살인 사건을 조사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들 (이렇게 얘기하니 일반적 추리 소설로 보이네요 --;: )
이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떻게 한 작가가 이렇게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걸 추리소설의 형식을 가진 소설에 녹여낼 수 있는 거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중세의 실제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이 결합되고 때로는 교묘하게 오마주되어 읽다보면 어디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단심문관 베르나르 기, 우베르티노, 미카엘 등의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면서 이야기 안에서는 때에 따라 사실과는 다른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장미의 이름의 의미 
이 소설은 왜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을까요? 워낙 여러가지 의미와 배경이 중층적으로 숨어 있는 소설이니 해석은 당연히 분분하지만 아주 간단히 들여다 볼 수 는 있을 겁니다.
장미의 이름은 포스트모던 소설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불변의 진리는 없다 그리고 확실한 것도 없다. 많은 포스트모던 소설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끝맺지요. 장미의 이름 소설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책은 언제나 다른 책 이야기를 하고 모든 이야기는 이미 이야기되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옛날의 장미는 오직 이름으로만 남아서 우리는 이제 그저 그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장미가 가지고 있던 존재, 실체 그리고 그 의미들이 그 동안 수없이 얘기되고 소모되어서 이제는 상징적인 이름만이 남아 있다고 얘기하는 듯 보이지요. 에코가 뛰어난 기호학자이었음을 그리고 이 책은 기호학을 소설로 녹여낸 것이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것들에 대한 비유라고 보기도 합니다. 제목만 남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아리스토텔리스의 웃음에 대한 책, 불타버린 장서관, 불속에서 죽어간 여인.

장미의 이름 소설에 대해 에코가 직접 설명한 책 장미의 이름 노트에 나오는 관련된 멕시코 시인의 시도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겠지요.

Red rose growing in the meadow,
you vaunt yourself bravely
bathed in crimson and carmine:
a rich and fragrant show.
But no: Being fair,
You will be unhappy soon.

덤불 속에서 피어나는 붉은 장미
용감하게 자신을 뽐내네
무겁고 짙은 붉음에 물들어
풍부한 향기의 향연.
하지만 아니야. 공평하게도,
너는 곧 불행해질거야.

(시의 영문본을 제가 직접 번역해 보아서...  그지같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ㅠㅠ)

국내 2000년 처음 고 이윤기 선생이 펴냈던 번역본은 오역이 많다는 공개적인 문제제기로 인해 새롭게 수정개정판을 냈었다고 하는데요. 저도 사실 첫번째 번역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4번 정도 읽었던 것 같은데요. 이제 수정판으로 다시 읽어야 할 때가 온 듯 합니다.

너무나 정교하고 내용이 방대해서 어떤 평론가는 컴퓨터로 쓴 것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기도 했다지요. 제가 에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방대한 지식과 학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유머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읽기 고통스럽고 (특히 첫 100 쪽) 서양의 중세 역사,  중세 교회, 신학 및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정말로 꼬옥 읽어야 할 책입니다. 너무 어려우면 자세한 사항은 대충 건너뛰면서 줄거리만 따라가는 것도 방법이에요. 솔직히 저도 그렇게 읽었답니다. ^^;; 

그리고 다시 한번 움베르토 에코의 명복을 빕니다. 에코 선생님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게 해주셔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천당에서 있을 선생님의 모습은 너무나 잘 어울리네요. 나팔을 불고 있는 아기 천사 옆에서 이탈리아 와인 한 잔을 들고 깃털펜을 잉크에 찍어가면서 '레비아탄이 천국에서 가지는 기호학적인 의미와 헐리우드 영화와의 관계'에 대한 책을 쓰고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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