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위한 새로운 세계
우리 나라에서 [개미]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소설 타나토노트의 앞 부분에 보면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합니다.
사상이 없고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허구한 날 전기, 자서전, 자전적 소설, 소설적 자전 따위나 쓰는 거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없는 작가들은 결국 자기들의 세계를 묘사할 수 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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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말이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오늘날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거야. 그 책은 아마도 환상 문학이나 공포 문학 속에 들어갔겠지. 외눈 거인 키콜로페스,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 그 밖에 많은 괴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니까 아마 우리 같은 애들이나 읽어 주겠지.
워낙 성향이 확실한 작가이다보니 조금 극단적이고 건방지게 들리지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는 <따분한 작가>들이나 현실 세계에 기초를 둔 책을 쓴다라는 주장이니.이 주장에 동조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는 책들에 대한 폄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작가들에 대한 찬사는 마땅하다고 보는 편입니다.
특히 현실과 다른 아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 작가들이 있지요. 위에서 언급된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부터 지금은 장르 소설로 되어버린 환타지 소설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는 J.R.R 톨킨, 비교적 최근에 와서는 해리포터를 만들어낸 조안 롤링까지.
톨킨이 만들어낸 중간계 Middle Earth 는 방대하고, 정교하고 깊습니다. 지리, 창조 신화, 역사, 종족, 신, 심지어 중간계의 언어까지 새로 만들어냈으니까요.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톨킨이 쓴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과 메모까지 탈탈 털어서 책으로 발간되어 왔습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독일 작가 발터 뫼르스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톨킨의 중간계처럼 방대하지는 않고 조앤 롤링의 호그와트처럼 반짝이지는 않지만 북유럽의 신화에 바탕을 두고 현실세계가 기묘하게 반영되는 차모니아 대륙입니다.
차모니아 대륙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시리즈 중, 4번째는 책과 글이모든 것의 중심이자 화제가 되는 도시 부흐하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꿈꾸는 책들의 도시 입니다.
여기선 모든 것들이 책과 글이 우선인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혹은 현업 작가이며 대부분의 직업들은 책에 관련된 것들이고 도시에서는 24시간 내내 작가 이벤트나 시 낭송회가 열립니다. 범죄도 대부분 책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짝퉁 책 만들어 팔기, 속여 팔기, 끼워 팔기 심지어 환각 상태로 만들어서 가진 돈을 모두 책 사게 만들기. ^^ 그 중에 최고봉은 지하세계에 들어가서 서로 죽고 죽여가며 귀한 책을 구해서 돈을 버는 책 사냥꾼.
[ 꿈꾸는 책들의 도시 ]는 작가 주인공 "공룡" 미텐메츠가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겪는 모험을 그렸습니다.
현실세계를 반영하지만 모든 것은 새롭습니다. 작가가 창조해낸 수많은 책들과 종족들 그리고 역사가 펼쳐지지요.
특히 주인공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부흐링 족은 정말 매력적인 창조물이네요. ^^ 책을 읽으면 무려 배가 불러집니다. 말 그대로 책을 먹고 사는 아이들이에요.
사람은 밥 없이는 살아도 이야기 없이는 못 산다고 작가 김탁환은 "방각본 살인사건"의 주인공 입을 빌려서 얘기했었지요.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때로는 살짝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도 그 시간을 견뎌내면 새로운 세계에 어느덧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