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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싶지만 한국인과 놀고 싶어

아무말시리즈


미국에서 일한 지 어언 7개월, 언어의 장벽에 지쳐가고 있다. 나의 영어실력이 문제 이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살지 않았다면, 외노자 모두가 느끼고 있지 않을까.
나는 미국에서 "잘" 살고 싶다.


20대 때는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다.(휴가를 제한하는 병원 때문에 멀리는 못 갔지만, 동남아는 거의 마스터) 그리고 혼여 할 때는 항상 도미토리에 묵으며, 처음 보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꿈꿨었다. 그 당시에는 외국여행까지 가서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걸 이해하지 못하였고, 일부러 한국인 없는 곳, 한국리뷰 없는 숙소를 고집하였었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을 해보고 나서, 나는 그런 경험들에서 기운을 얻기보다는 기운을 뺏기는 스타일임을 알게 되었다. MBTI에서 E가 아닌 I인것이다. 그리고 기운을 뺏기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들과 Communication을 하지 못하고, English Listening and Speaking 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 또 한 번 좌절감을 느꼈다. 랩미팅이 있었는데, 전체적인 맥락은 이해했으나, 디테일한 정보들을 놓쳤다. 알콜측정관련 서류작성법, 경찰들과의 일처리등 간단한 회의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들었다. 물론 내가 더 노력해야 할 문제지만, 편해지는 날이 과연 올까 하는 무력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해온 것을 생각하며, 다시금 X나 버티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미국에 살고 싶다고 해서, 꼭 외국인과 친해지고 어울려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장동료들과의 스몰톡, 그리고 업무적대화는 영어를 사용해야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7년간의 영어공부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들과의 언어장벽은 평생 무너뜨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미국에도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고, 어느 지역을 가도 한국 마트가 있을 것이다. 영어를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그냥 한국인과 어울리는 게 좋다.(한식은 포기가능)


최근에 나의 일정을 이야기해보자면, 내일은 한국간호사쌤들이랑 놀기로 하였고, 다음 주에는 설날 기념으로 떡국을 같이 먹기로 하였으며, 그다음 주에는 미루고 미뤄뒀던 집들이를 하기로 하였다. 말이 통한다는 게 이렇게 마음이 편하다. 나랑 같이 놀아주시는 한국 간호사쌤들중 한 분도 두바이서도 몇 년 근무하시고, 영어 환경에 오래 있었지만, 아무래도 네이티브는 아니기에 나랑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미국인의 차가움이 싫다고 하였고, 필리피노들에게는 정이 간다고 하였지만, 자기들끼리 타갈로그를 주고받는 게 싫다고 하였다.

위치가 좋지는 않다.

이번에 CA에 5개월 계약직 공고가 나서 살펴보니, 시급은 72달러에 경력도 1년 이상만을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계약조건이다. 한국에서의 계약직은 1년 육아 대체 또는 정규직을 미끼로 하는 계약직들뿐이다. 10년간의 대학병원 경험동안, 많은 계약직들을 만났다. 조건은 당연히 정규직보다 못하며, 경력을 쌓기 위해서 희생되며, 소모품처럼 버려지게 된다. 그중 절반 이상은 계약해지 되었고, 운 좋은 몇몇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급하게 필요한 인력이라면 미국처럼 돈이라도 많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요공급이 무너져버린 한국 임상병리사 취업시장에서는 우리가 항상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 말이지만, 내가 임상병리사 협회장이 된다면 학교를 좀 정리하고 싶다. 일 년에 2천 명이 넘는 임상병리사가 국가면허를 취득하여 취업시장에 진출하고, 양질의 일자리인 대학병원 취업자리는 1년에 100명 안팎이다. 만약 수요를 줄일 수 없다면 개인병원, 종합병원의 업무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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