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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Nov 17. 2018

꼬리치며 뛰어온다

인간이여 슬퍼하지 말지어다


이사를 앞두고 집정리에 한창이다. 여기저기서 오래 전 물건이 튀어나온다. 오늘은 우연히 10여년 전에 쓰던 USB를 발견했다. 뽀얀 먼지를 이불처럼 덮고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낡은 USB를 컴퓨터에 연결해 보았다. 다행히 컴퓨터는 곧 우우웅- 하는 기계음을 냈다. 살아있었구나. 나는 그 곳에서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폴더를 열때마다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이 튀어나왔다.


이제는 거동을 못 하는 외할머니가 멀쩡히 걷고 계셨고, 주름살 없는 엄마가 탱글탱글 웃고있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들이, 예전에 살았던 동네 풍경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나의 어린 개가 있었다. 개는 분주했다. "밖에 나갈래?" "간식 먹을래?" 하는 내 목소리를 따라 사방팔방 움직이는 중이었다. 개는 "가자"는 나의 말에 망설임 없이 꼬리치며 뛰어나왔다.


컴퓨터 창을 닫고 고개를 돌려본다. 나의 늙은 개는 아까부터 귀를 닫고 자는 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자!" 하고 큰 소리를 내본다. 개는 뛰어나오긴 커녕, 꼬리조차 흔들림이 없다. 나는 이내 민망해져서 괜히 딸에게 "우리 슈퍼에 가자!" 말해본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꼬리가 없는 웬 검은 머리 강아지가 날름 뛰어온다.


    




늙은 개를 키우지만 슬프지 않다. 걸음은 거북이만큼 느린 주제에 성큼성큼 무섭게 늙어가는 개를 보아도 여간해선 마음이 조급하지 않다. 개와 나 사이에 있던 무언가가 점점 희미해진다. 늙은 개는 응답이 없고, 표정이 없고, 기력 없이 덤덤하다. 우리가 한때 나눴던 호들갑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자리엔 얌전한 눈빛만 남았다. 나는 어쩐지 우리 사이에 흐르는 이 점잖은 공기가 반갑다.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될 리가 없지. 나는 예전보다 더 심각한 호,호,호들갑 정도 되는 경망스러운 말과 행동을 일삼는 중이다. 다섯 살 된 딸을 둔 엄마의 운명이다. 아이의 질문은 따발총 저리 가라이고, 내 반응이 조금이라도 무덤덤하면 딸애는 서운하다 삐치기 일쑤다. 10년만에 얻은 우아한 시간은 손에 쥐어보기도 전에 스르륵 빠져나갔다. 내 손에 남은 건 다시 돌아온 우악스런 시간 뿐.


늙은 개를 키우면서 슬프지 않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나는 슬펐을지도 모른다. 아니, 슬펐다. 하지만 내게는 슬픔의 구원자가 있다. 세상의 슬픔을 용납하지 못하는 딸애가 내 곁에 있다. 아이에게 슬픔이란, 지금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왜 자꾸 줄어드는가에만 적용된다. 다섯살 인생 가라사대, 아이스크림이 줄어드는 게 아닌 이상, 인간이여 슬퍼하지 말지어다.

  




현관문을 삐걱 열어도 반갑다고 꼬리치는 개가 없다. 먼 길 다녀와도 달음질 쳐 들어오는 개가 없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까지, 이마만큼 날 반겨주었으면 그걸로 됐다. 대신 꼬리는 없지만 내겐 개에게 달려갈 두 발이 있다. 지금껏 나를 반겨주었던 이에게, 이제는 내가 반갑다고 큰소리로 인사해 본다. 어쩌면 늙은 개는 아주 작게나마 듣고있을 지도 모른다. 호들갑 떠는 목소리를, 반갑다는 나의 인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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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바둑이 방울>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요일 다섯시입니다.

목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글을 올려봅니다.

토요일처럼 짧고 즐거운, 인사를 건네고 싶었어요.


그동안 <아기와 늙은 개>를

사랑해주셨던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제는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1녀 1견과 살며 배운 것- 이라는 제목으로

서점에서 찾아뵙게 됐네요.

무척 기쁩니다.


저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어요.

지역을 바꾸는 것 뿐인데 어쩐지 <아기와 늙은 개>,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만나뵙지 못한

독자분들과도 영영 인사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러다 이 글을 쓰고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답니다.

잠시만 안녕하고,

새집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궁리하여 새로운 에세이로 찾아뵐게요.


그럼, 언젠가 불특정 목요일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목요일 다섯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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