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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Aug 22. 2019

망둥이 볼때기

자박자박한 행복을 입에 넣는다

저녁밥을 안치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흘러든다. 냄새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삼겹살 냄새만큼은 진하고 누런 냄새 길이 있는 게 분명하다. 침이 고인다. 눈 언저리가 시큰하다. 침과 눈물이 동시에 고이는 이 냄새를 나는 아주 오래도록 기억한다.



나는 눈깔사탕을 사러 나온 참이었다. 손에 50원을 쥐고 양조장을 향해 잰걸음을 했다. 서쪽 바다에 점처럼 박혀있는 작은 섬에서, 양조장은 무엇인가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도시와 이어진 이 작은 출구를 나는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옹색한 진열대에는 고작 조미료나 담배,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음이 분명한 통조림과 몇 가지 과자봉지가 전부였지만, 여섯 살 아이에게는 더없이 완벽했다. 잠시 우물 밖 세상을 염탐하고서 문을 나서려는데, 문득 진한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를 더듬더듬 따라가 보니 양조장 뒤뜰이 나왔다. 이른 대낮부터 동네 삼촌들이 삼삼오오 불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내달렸다. 뒤란에서 일하고 계시던 엄마를 찾아냈다. 뛰어오는 동안 내내 벼르고 별렀던 "엄마! 나도 고기 먹고 싶어!"라는 말을 하려는데, 헤맹이 빠진 입에서는 울음만 불쑥 튀어나왔다. 왜 우느냐는 엄마의 말에 더 큰 울음만 꺼내놓을 뿐. 나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엄마 치맛자락을 끌며 양조장을 향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보며 엄마는 잠시 말을 잃었다. 평생 고기를 입에 대지 못했던 엄마조차, 고소하게 사방으로 퍼지는 고기 냄새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그래, 엄마가 내일 뭍에 나가서 고기 사줄게."


엄마는 늘 풀밭 밥상을 차렸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고무 대야를 모두 꺼내어 비를 받아 그 물로 쌀을 씻고 비설거지를 했다. 작은 아궁이 두 개로 솥밥을 지어먹고 찌개를 끓여냈다. 가끔씩 바다에서 잡아온 망둥이나 조개, 굴로 허전한 밥상을 메꿨다. 아이들과 남편은 군소리 없이 꼬약꼬약 잘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한낮의 고단함을 잊었다. 그렇게 충분한 줄 알았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음 날 엄마는 뭍에 나갈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번 뜨는 배 조차 기약할 수 없는 외딴섬에서 그런 일이야 부지기수였다. 부엌 굴뚝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날, 아버지는 면사무소에서 퇴근하자마자 말없이 바다에 가 앉았다. 그러고는 저녁 밀물에 쓸려온 망둥이를 여럿 낚아왔다. 섬에서 나고자란 이에게 망둥이 낚시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게 광에 가서 감자와 양파, 마늘을 꺼내오라 하셨다. 바람길이 잘 통하는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나는 온기 없이 멀끔한 채소를 소쿠리에 담았다.


양은 냄비를 꺼내어 감자를 자박하게 깔고, 망둥이를 얹는다. 대충 썰은 양파와 마늘, 고춧가루를 뿌리고 푸근히 끓여낸다. 바다와 밭에서 추려온 적당한 욕심이 서로 엉겨 투박하고 시원한 냄새를 풍긴다. 밥상에 둘러앉을 시간이다.


아버지는 나를 품에 안고 밥을 떠먹이셨다. 밥 한 숟갈 위에 망둥이 볼살이 얹어졌다. 아버지는 망둥이 살 중에서도 가장 고소한 볼살을 발라주셨다. 볼살은 오직 내 차지였다.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았지만, 볼살만큼은 다른 이에게 얹어준 적 없었다. 보드라운 생선살을 입에 넣으며 나는 다시 파실파실 웃었다.  


 



딸아이를 데리고 섬에 왔다. 아이는 지금 원인 모를 아토피와 싸우고 있다. 고기는커녕, 계란도 우유도, 가공된 식품도 먹지 못한다. 우리는 근 1년간 이리저리 애쓰다가 결국 폭삭 지쳐 섬을 찾았다. 아버지는 어서 오라는 말 대신, 노을이 여기저기 피어있는 바다에서 망둥이 몇 마리를 낚아오셨다.


갓 잡아온 망둥이 배를 갈라 투박하게 소금과 양파만 넣고 졸인다. 딸애가 부엌에서 알쏭달쏭한 냄새가 난다며 코를 벌름거린다. 그 냄새에 홀린 식구들이 하나 둘 밥상으로 모여든다. 아이가 할아버지 곁에 앉아 밥을 뜬다. 망둥이 볼살이 밥 위에 얹어진다. 아이가 볼이 터져라 입을 벌린다. 고 작은 입으로 "망둥이 볼때기 맛있다, 맛있다." 하며 입을 야불거린다.


우리는 오늘도 밥상 가까이에 둥그렇게 포개어 앉는다. 끓어 넘치지도, 졸아붙지도 않은 자박자박한 행복을 입에 넣는다. 입이 터질세라, 이 순간이 새어나갈세라, 입을 옹그리며 꿀꺽 삼킨다. 밥 먹는 데 정신이 팔렸다가 문득 안마당을 내다본다. 아버지의 낡은 낚싯대가 대문 옆에 세워져 있다. 아버지는 내일도 망둥이를 낚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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