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대중의 생애를 통해 돌아보는 한국 현대정치사
짝꿍, 부모님과 오랜만에 주말 데이트를 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도 관심을 가지실 만한 <길 위에 김대중>을 보러 극장을 찾았는데, <수라> 이후 거의 반년 만에 찾는 극장이었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조명하면서도, 그를 정치 거목으로 키워낸 당시 민중의 열망을 영상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현대사 공부를 영상으로 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사실 나는 90년대 후반, 2000년대 이후부터 정치인 김대중을 인식하기 시작했기에, 신자유주의 정책과 제도를 허용한 그의 한계 속에서 (다소 비판적으로) 그를 마주했었고, 그 이전의 삶은 아주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국민을 저버린 이승만 정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부터 87년 이전까지 정치인으로서 그의 삶을 다룬 다큐를 통해, 어떤 시대적 힘이 그를 정치 거목, 그리고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와 그간의 역경도 무척이나 놀라웠지만,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그를 살려낸 것은 결국 민중의 의지와 염원이었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박정희의 영향력 아래에서도 민주 진영 대선후보인 그의 연설을 들으러 100만이 넘는 인파가 장충공원에 모여든 영상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짝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인생은 그의 것이 아니었겠구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그 인파를 보고서 함부로 살 수는 없었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치열한 공부와 사상으로 반대세력과 민중을 설득하려 했고(지방자치제의 필요성을 일목요연히 어필하던 육성이 기억에 남는다), 사형과 무기징역으로 옥살이를 할 때조차 공부를 놓지 않았던 면면을 보며, 무식하고 천박한 현 시대의 누군가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87년 6월 항쟁 이후 김대중이 광주를 찾는 장면이었는데, 이때부터 극장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80년 5월, 김대중 석방과 독재 타도를 외치며 나왔다 무참히 짓밟혔던 광주의 시민들, 그리고 5.18의 배후로 지목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이 오랜 세월 끝에 다시 만나게 된 순간.
참혹한 광주의 영상이 나오는 영화의 중반부터 엄마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영화를 보았는데, 그 장면에서 우리는 손을 더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광주역, 망월묘지, 금남로 등을 거치는 그의 여정 동안 길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외쳤던 “김대중”이란 이름. 어떤 영웅을 호명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흘린 핏값을 기억하며, 민주화에 대한 우리의 열망대로, 부디 그렇게 정치를 하며 살아남아라”라는 부름으로 느껴졌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요즈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계속 생각날 것만 같다(이 리뷰를 쓰는 것도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서이기도). 기성 제도권 정치에 기대를 거는 게 바보 같기만 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기대를 걸어야 바뀌는 게 정치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우리의 열망대로 살아라, 라고 정치인들에게 강력하게 주문할 수 있는 힘을 부디 되찾을 수 있기를.
뱃속의 아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더 커져만 간다. 육아에 대한 이런저런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카테고리 안에 ‘정치’ 카테고리도 중요하게 넣어두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