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지옥
총제적 난국. 에너지 부족. 시간 부족.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것과는 별개로 현실의 퍽퍽함은 여전하다.
내가 나의 ‘불안’과 싸워온 시간이 얼마나 될까? 진실은 이미 40년이 넘는 시간을 이 녀석을 다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향성이 항상 좋지 못했다. 적당한 불안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좋은 촉매제라고 하지만 내게는 적당한 불안이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 불안은 압도적으로 큰 덩치를 유지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다룰 줄 몰라서 항상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 현실이었다.
‘불안’이 나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수십 가지가 넘고 항상 여유 있게 조금씩 조금씩 나를 공략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조금 느슨해진 틈을 귀신처럼 알아채고는 해일처럼 나를 덮쳐서 내가 쌓아온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앗아가곤 했다. 쌓아 올리기는 힘들어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잠깐이었다. 지금이라면 예전과는 달리 공들이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모습에 완전히 좌절하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내면에는 원래 무엇을 튼튼하게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원래 흔들리는 존재이고 앞으로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모자람을 더 이상 숨기고 덧칠하여 다른 것으로 위장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완전한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그런 존재가 되면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도 금물이다. 지금처럼 흔들리는 것이 나의 본모습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정한 리듬과 흐름을 타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너무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나는 항상 나와 전혀 다른 존재들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모방하는 것에 너무 골몰했다. 일관성과 꾸준함을 가지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멋있고 존경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꼭 그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그것에 골몰하면 일상은 개미지옥이 된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무너지는 허약한 모래 경사면에서 계속 실패만 하는 부지런한 바보 개미가 되고 마는 것이다. ‘불안’은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고 이미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항상 나를 내팽개칠 준비가 되어있다. ‘불안’이 한번 거세게 몸을 털면 나는 내면의 중심잡기를 할 수 없다. ‘완벽주의’와 ‘허무주의’를 적절히 혼합하여 균형감 없는 내 현실의 모습을 공략하면 나는 지금처럼 또 속수무책으로 ‘총제적 난국, 에너지 부족, 시간 보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게 그냥 현실의 모습인데 더 잘하고 싶지만 이게 현재의 최선이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완벽한 존재는 될 수 없다. 기분에 따라 한없이 업과 다운을 계속하는 이 인식체계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냥 장점과 단점을 모두 내포한 나의 양면성, 모순성의 일부분이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의 내적 풍경이다. 매번 나 스스로에게 이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무너지는 내가 나 자신이며 쓰러지고 흩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도 그냥 인정하자. 대신 그냥 매번 다시 시작하면 된다. 너무 근사한 환상을 만들지 말자. 남들의 인정과 멋진 결과물이 나 자신을 극적으로 바꾸어줄 것처럼 인식하지도 말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년 일정 시간은 붕 뜬 것처럼 즐겁고 자유롭게 그리고 일정 시간은 물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무겁고 답답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걸 지금껏 몇 번이나 거듭하면서도 항상 부정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겠다고 완벽을 고집하면서 나를 망가뜨린 것이 나다. 과거에 나의 실패로 인해 생겨난 이상한 법칙과 믿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이 뭔가 망가진 듯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총체적 난국’이 맞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것을 할 에너지도 시간도 부족한 것도 맞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을 다 못한다고 세상이 무너지거나 내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부족해서 뭔가 끌려가는 이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씩 개선하는 방향에서 접근해보자.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글쓰기의 기술도 어느 한순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무수히 무너지고 쓰러지는 걸 그냥 지극히 정상으로 인정하고 어제 무너뜨린 마음을 곧추세우고 무너진 체력을 올리기 위해 조금 더 뛰고 움직이면서 잘 먹고 잘 자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