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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Aug 16. 2021

정리되지 않는 생각

어긋나 있는 감정선

최근에 난 좀 이상한 걸 느낀다. 나의 감정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른 관점들을 가지게 되었는데 정확하게 어떤 변화가 나의 인식체계에 일어났는지 콕 집어 특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왠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 너무 오랫동안 자극과 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감정이 일어나는 상태 그 자체에 익숙해져 버려서 실제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에는 무감각해져 버린 것을 최근 경험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것을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나의 실제 감정의 흐름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법을 나는 잊어버린 것 같다.


 진짜 슬플  슬프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일로 슬퍼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마음 가는 대로 슬퍼해본 적이 언제 였을까?  자신의 슬픔에는 이상할 정도로 덤덤한 감정을 느낀다. 쉽게 눈물이 나지도 않고 슬픔이 올라와야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감정은 생겨나지 않는 , 이런 상태를 과거에는 의연 해졌다는 하나의 성장처럼 느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상태가 이상하다.


하지만 모든 슬픔에 내가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캐릭터들이 느끼는 감정에 호응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그런데 스스로의 아픔에 반응하여 슬픔을 느끼는 것은 왜 이렇게 낯선 일이 되어 버렸을까? 내 슬픔에 반응해 마지막으로 눈물 흘려본 것은 언제쯤이었을까? 이런 것이 잘못되었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었나?


나는 우리나라 영화들의 신파나 드라마에서의 너무 작위적인 슬픔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런 장면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때 느끼는 나의 감정의 일부는 당혹스러움이다. 마음속에 그리 큰 슬픔이 일어나는 것이 아님에도 화면의 캐릭터들과 상호 작용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 모습이 때론 정말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인 또는 가상의 캐릭터에는 쉽게 동화하여 반응할 수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깊은 슬픔에는 반응하지 못하는 나는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내 안에 얼마나 큰 슬픔이 존재하고 있는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정말 소중한 것을 잃었다면,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면, 또는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했다면 그것은 큰 아픔이면서 또한 큰 슬픔이어야 한다. 근데 내가 살면서 그런 슬픈 장면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울어본 적이 있었나? 나는 그냥 마비된 것처럼 그런 장면을 지나쳐 왔다.


아주 가끔 잠결에 문득 외할머니의 죽음과 부재를 느꼈을 때 나는 내 몸 전체가 슬픔이 된 것처럼 무너져 내린 적이 있다. 그냥 나 자체가 슬픔이라는 감정이 된 것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뭔가 막힌 듯한 흐느낌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한없이 울다가 지쳐서 다시 잠이 든 적이 있었다. 이처럼 내가 완전하고 깊게 나의 슬픔을 느끼는 장면들은 언제나 잠결이다. 그렇게 비몽사몽 간에 깬 듯 잠든 듯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서 나는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감정들과 정직하게 마주하게 되고 그때에야 비로소 그 감정들을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내 안에는 아직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가 많이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난 잠결에 내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과 종종 대면한다. ‘불안’, ‘공포’, ‘슬픔’ 모두 마찬가지다. 너무 커져서 더 이상 내면에 온전히 담아 둘 수 없을 때 그것들은 그렇게 잠꼬대처럼 터져 나온다. 하지만 보통의 깨어있는 의식상태에서는 나는 진실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에 서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난 이별과 상실을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회피하고 외면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헤어지는 그 순간에 이별, 상실의 아픔에 대해서 대가를 치르는 것을 거부하고 지불 시기를 무기한 연장시켜버리는 바보 같은 꼼수를 부려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꼼수로 인해서 나의 감정을 정직하게 느끼게 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눈물도 흐르지 않고 슬픔도 크지 않다면 그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난 자신의 슬픔을 직면하는 방법을 까먹어 버렸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정직하게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미숙함의 징표처럼 여기면서 계속 감정 자체를 왜곡하고 감추는 것에 골몰하게 되었다. 큰 아픔에도 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남자다움이라고 착각하면서 뭔가 내적으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글을 쓰면서도 이 표현들이 정확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손이 가는 대로 일단 글을 써 본다. 오랜 시간 머릿속으로 생각을 계속해도 딱 떨어지게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전에도 이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막연한 어떤 인식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선명하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겠다.


오늘 하루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내내 감정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부정적인 어떤 느낌과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글을 계속 써나가는 것이 힘이 든다. 며칠 동안 고심하던 주제인데 지금은 또 글을 다 지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일단 그만 쓰고 좀 더 시간을 들여 이 주제는 계속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또 글을 지우고 싶다는 충동이 강해져서 이 글은 급히 공개해 두고 오늘 하루의 글쓰기는 마무리하려 한다.  감정은 느끼는 것도 다루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감정을 잘 다루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자기 수행이 아닐까 하는 감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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