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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송아 Feb 13. 2023

'등대장'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진정한 교육적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는 ‘등대장’이라는 존재가 있다. 전국 각 지역에 ‘지역등대모임’의 리더 역할을 하는 회원들이다. 등대장으로 거듭나기 전, 최초의 역할은 소소했다. ‘등대지기학교’라는 8주간의 부모교육을 받는 동안에 강의 후기를 쓰는 인터넷 카페에서 내 지역 게시판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수강생들의 게시글에 댓글 다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8주간의 ‘등대지기학교’는 부모의 역할과 양육관을 밑바닥부터 다시 성찰하게 만들었다. 입시 경쟁과 사교육 걱정으로 일상이 흔들리는 부모, 교사를 위로하고 진정한 교육적 가치를 고민하는 교육과정이었다. 강의 후에는 신청을 받아 1박 2일 졸업여행을 떠났다. 서울 강남에서 온 회원 한 사람은 나 말고 강남 사람은 없겠지 하며 별 기대 없이 참가했다가 아들과 같은 초등학교 다니는 딸을 둔 회원을 만나 이산가족 만난 듯 기뻤다고 했다. 그렇게 가까운 지역에 사는 등대지기학교 졸업생들끼리 지역모임을 시작했다. 지역 게시판 댓글 달기를 맡았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지역대표가 되었다. 




자녀 교육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사람


아이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사는 지역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모래사장에 바늘 찾는 것 같았다. 서너 명의 적은 숫자이지만 사교육걱정을 통해 뜻 맞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되자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모임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지역모임이 전국에 50-60개까지 늘어났다. 지역모임 업무만 전담하는 상근자가 생기고, 사교육걱정 활동에 관심있는 사람 중에는 지역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이들도 수시로 생겼다. 


각 지역에서는 본부의 등대지기학교 8주 과정을 4주로 압축해서 지역 등대지기학교를 개최하기도 했다. 강의를 듣고 교육관이 통하는 이들이 새롭게 지역모임에 합류했다. 큰 규모로 쑥쑥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늘어가는 것이 소중했다.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 책들은 다른 책과 달리 오래 기억에 남아, 아이를 대할 때 종종 떠올랐다. 아이 공부는 물론 학교 생활, 자라면서 겪는 크고 작은 양육 고민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길동무가 되었다. 


지역등대모임을 오래 하다 보니 무엇보다 이웃집 이야기와 사교육 시장의 마케팅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자랑스러워하기보다 나 자신이 먼저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려 노력하고,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고민하며 삶을 나누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둠을 밝히는 등대지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지역대표에게는 등대장이라는 보다 걸맞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문제는 코로나였다. 누구든 코로나의 피해를 비껴가기란 어려웠고 지역모임에도 코로나는 직격탄이었다. 온라인으로 꾸준히 모임을 이어간다 해도 전같이 운영하기는 힘들어졌다. 그 와중에도 등대장들은 줌으로 모여 새로 추진하는 단체의 정책을 스터디하고, 캠페인 내용을 공유했지만 막막함 속에서 버텨야 했다. 




등대장은 누구인가


끝나겠지 끝나겠지 하면서도 끝을 알 수 없던 코로나가 3년만에 하강국면에 접어든 지난 토요일, 드디어 등대장들의 대면 워크숍이 열렸다.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일 줄이야. ‘지역모임이란 무엇인가?’, ‘등대장은 누구인가?’ 이미 다 알 것만 같은 원론적인 질문인데도 마치 처음 접하는 것처럼 새로웠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다시 묻는 것 같았다. 


교육 전문가도 아닌 내가 지역 등대장이라는 역할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년 넘도록 깃발만 들고 있던 나홀로 등대장이다가 지금은 4명이 꾸준히 모이는 청주지역 전인선 선생님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전문가처럼 모범 답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이 길을 걸어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것.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때로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지만, 나라도 지켜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은 내던질 수 없다는 것. 지역모임에 참석하고 싶은 회원이 쭈뼛쭈뼛 단체 문을 두드려도 등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모임을 시작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외로운 만큼 서로의 존재가 반가운 등대지기들을 묶어주는 구심점이 바로 등대장이다.


교육의 변화는 너무 멀고, 너무 크고, 너무 어려운 문제지만, 지금 내 옆에 우리 자신의 삶부터 바꾸어 나가자고 손 잡을 사람이 있다면 그 손을 놓치지 말자. 등대장들은 그렇게 손을 건네는 사람, 함께 걸어가는 사람으로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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