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신시험의 난이도와 평가, 변별이 목적인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엔 민원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민원이라는 단어를 쓰니 마치 구청이나 주민센터 같은 공무원 조직에서 받는 항의 전화 같은 어감이다. 실제 내용도 비슷하다. 시민운동단체가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시민들의 뜻을 모아 활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 건의, 제안을 수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대개 이 전화의 특성은 단체의 미션과는 거리가 먼 제안이거나 너무나 집요해서 몇 십 분씩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고 속이 풀려야 끊을 수 있는 전화기에 ‘민원’이라고 불리게 된다. 물론 단체의 활동과 직접 관련이 높은 용건도 있는데, 그럴 때는 십중팔구 항의 전화이다.
그날 전화는 인천의 어느 중학교 수학교사로부터 걸려왔다. 핵심은 이러하다.
“나는 교과서에 나온 유형 그대로 시험문제를 출제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교육부에서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했다는 경고를 받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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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21년 10월, 이탄희 국회의원실과 함께 경기·인천의 사교육과열지구 중학교 6곳의 수학 내신 시험이 교육과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중학교 2학년 1학기 수학 시험 내용을 분석했다. (서울은 교육청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분석 작업이 불가능했다.) 영재학교 합격자가 많은 학교일수록 시험에서 선행 출제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현직교사와 수학교육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19%가 교육과정의 평가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들이 공교육 12년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수하게 되어 있다. 이 내용만큼은 반드시 가르쳐서 수업 후에 학생들이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능력을 나타낸 기준을 국가가 정해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평가기준’이 만들어진다. 성취기준에 도달한 정도를 상/중/하로 나누어 평가의 기준 역할을 하도록 한다. 성취기준 가운데 너무 어려운 내용일 경우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꺾을 수 있으므로, 평가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기준도 분명히 정해두었다. 문제는 교과서에 실린 평가문항에도 평가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 출제되는 경우가 있다. 교과서 심사 과정에서 이를 엄밀하게 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일선 교사들이 ‘평가기준’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이 기준에 근거해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훈련을 한 적도 없다는 현실이다. 민원전화를 한 인천의 수학교사는 답답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본인은 교과서에 나온 유형대로 문제를 출제했을 뿐인데,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했다고 교육부에서 문제제기를 하니 말이다. 학교 현장에서 평가기준은 유명무실하다. 교사들이 사용하지도 않고, 존재조차 모르는 평가기준을 교육당국은 많은 자원을 들여 왜 만들었을까. 학생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평가'에서 실질적 기준을 만드는 건 교육과정 설계상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성취평가제가 도입된 지 이미 10년이 돼 가는 중학교에서도 여전히 변별을 위해 평가기준 밖의 문제를 출제하는 관행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변별을 위해, 서열을 매기기 위해 ‘평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본디 평가의 목적은 '학습자가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가를 진단하고 다음 단계의 학습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평가를 돌려주려면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