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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우 Jun 02. 2024

안락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2024년 5월 2번째

[아래는 제가 발행하는 뉴스레터인 Balanced의 내용입니다. 매주 월요일날 오전에 발송한 이후 3주 늦게 브런치에 올립니다. 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다음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https://balanced.stibee.com/]

죽음의 이야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에 따라 가지고 있는 정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럽게 친한 사람의 죽음을 접한 사람에게 죽음은 공포일수도 있으며,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쉬움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사람마다 다른 상처와 향기를 만들어 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는 비단 피부의 주름뿐만이 아닙니다. 주위에서 결혼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먼 친척들의 죽음을 보다가 부모와 형제, 친구들의 죽음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말하지 않지만,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매일마다 말하고 있지 않을 뿐이죠. 그래서 죽음이 친척과 가족, 친구를 통해 나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되면 걱정에 쌓이게 됩니다. 언젠가는 내 차례가 될것임을 알기 때문이죠.


비단 죽음뿐만이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중병에 걸리게 되면 그 고통도 결국 온전히 내 손으로 전해집니다. 병원의 시스템, 간병 인력의 부족, 의료 기술의 한계등을 겪게 되면 알게되는 사실은 죽음보다 날 먼저 맞이할 것은 병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그런적이 없지만, 예전에 몇번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열이 심하게 올라 당장 입원해야 한다며 의사가 난리친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으면 저의 미래가 그려지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지 않을까? 아무것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서 항생제와 진통제로 하루를 버티는 삶을 사는것이 나의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누구도 그런삶을 원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맞이합니다. 어쩌면 과거 폭력의 시대에 살면서 전쟁터에서 죽어갔던 평범한 사람들이 꿈꿔왔던 죽음의 방식이, 이제 저에게는,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갑작스럽지 않지만, 고통스럽고, 의미없는 연명의 삶을 살게될까봐 걱정하게 됩니다. 


저는 부모님이 두분다 오랜시간동안 병을 앓아오셨습니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기 전까지 근 수십년동안을 버티면서 살아온 세월을 목격해왔지만, 어렸을때는 저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코로나로 중병에 걸리시고, 사경을 헤메시다가 다시 병을 얻게 되면서 저는 또다시 죽음이 문턱까지 왔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무서웠던것은 엄마의 선망증세와 더불어 찾아온 치매증상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수십통의 전화와 폭언, 그리고 이해못할 행동들로 인하여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고 가족은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행복했던 가정이 이렇게 몇달만에 무너져내리는것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긴 저의 두려움은, 이제 내가 어머니의 길을 언젠가는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것이었습니다. 운좋게 지금은 상당부분 치료가 되셨지만, 그 상황에 대한 저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모든 사람들은 치매에 걸린다" 라는 두려운 문구를 책에서 본 이후 제가 떠오른것은 두가지였습니다. 첫번째는 가족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두번째는 저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스스로가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고, 혹시나 어쩔수 없이 병상에서만 지내야 한다면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정도는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 치매 관련 책뿐만 아니라 안락사에 대한 자료들도 꽤나 찾아봤고, 캐나다와 북유럽등지에서 이미 실행되고 있는 안락사 제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안락사는 터부시되고 있습니다. 악용될 여지가 매우 많은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자살률은 너무나 높습니다. 굳이 안락사같은 제도가 없어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있는데, 한국에서의 안락사는 제도상 여지를 만들어 줄뿐이라는 의견은 매우 타당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자살률이 높은 이유와 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한 고민은 매우 적습니다. 한국 특유의 쉬쉬하면서 모른척하는 문화와 돈이외의 다른가치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되는 기류가 큰 몫을 하는것 같습니다.


이번 슈카월드의 영상에서 안락사에 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g8mwtdYAaQ

못보신분들은 한번씩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현재 안락사를 도입한 국가의 현황과 문제점등을 간략하게나마 접할 수 있습니다. 


제가 70살이 되고, 만약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저는 한국에서 안락사를 도입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노력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안락사가 자살의 대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져야될것 같습니다. 안락사는 자살의 도구가 아니라 존엄성을 지키는 마지막 방안으로 사용되어야 하기 떄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돈만큼 중요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위한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일을 해야될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저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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