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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우 Jun 09. 2024

통계를 믿습니까

2024년 5월 3번째

[아래는 제가 발행하는 뉴스레터인 Balanced의 내용입니다. 매주 월요일날 오전에 발송한 이후 3주 늦게 브런치에 올립니다. 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다음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https://balanced.stibee.com/]


갓 대학교에 입학했던 저는 매우 자신만만했습니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뒤에는 불안감을 숨기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것 또한 자신감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무살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는 제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기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보다는 내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을 거라는 다짐도 있었죠. 그리고 만난 통계 수업은 저에게 약간 불편했습니다. 결국 모든것은 정규분포로 회귀한다는 사실은 특히나 남과 다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저에게 반항심을 만들어줬습니다. 내가 남들과 다르기 위해서는 정규분포에 속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시험을 대충 준비했고, 아마도 C를 맞았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통계와 조우한것은 서른 중반대였던것 같습니다. 어떤 자격증 시험을 봐야했는데, 과목중에 하나에 통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스무살의 기세등등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저에게 통계는 불편한 기억을 만드는 과목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전보다는 더이상 평균과 정규분포를 강조하는 통계가 싫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재미도 있는것 같고, 그동안 주위에서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왠지 통계가 가끔 맞는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통계와 평균, 그리고 정규분포가 만들어내는 의미를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저에게 남겨주고, 가져갔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노련해지고, 지식이 풍부해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체력이 예전보다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용기는 통계치를 보면서 한발을 넣다가 빼게 만드는 소심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말로 포장하자면 신중함이라고도 하죠. 


이렇게 통계는 저의 인생에 따라서 쓰임새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합니다. 다수의 사람이 모인 조직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들을 늘어놓던 옛 어른들의 말들은 통계와 유사했습니다."반드시 안좋은 일이 생길꺼야"라는 누군가의 경고를 무시했다가 호되게 뒷통수도 맞아보고, 친구에게 실망하고,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면서 머릿속에서는 편견의 이야기들이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빠져나가는 마을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이장님처럼 머릿속에는 계산기가 생겨버린것이죠. 


어쩌면 인생이란 자신만의 통계자료를 쌓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가지 큰 판이 있고, 그 안에서 변수들이 움직이면서 나름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원인과 결과들을 조합하는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것이죠. 그래서 세월의 여정이 길어진 사람들은 자신만의 통계를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말이죠. 


가끔 스스로가 놀랄만큼 편견에 빠져있는듯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되면 저 자신에게 매우 놀라게 됩니다. 저의 통계적인 구조가 잘못된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과 함께, 나도 별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씁쓸함을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하나둘씩 잘못된 변수들을 재조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쌓아온 경험은 모두 정답이 아니며, 과거의 변수들로 만들어진 유산일 뿐이기 때문이죠. 방어적인 기재로 잔뜩 만들어진 성에 산다면 평생 안전할 수 있을까요? 안전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올해 46세인 저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은 세월동안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편견의 벽에 갇혀서 허둥거리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글을 많이 쓰게되는 일요일 저녁이 되면 스스로 다짐을 합니다. 내일은 또다른, 새로운 경우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자기계발, 혹은 재테크와 같이 가치를 높이는 일은 아닐지 모르겟지만, 제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수 있을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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