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우 Jun 16. 2024

효율성은 행복을 창조할 수 있을까

2024년 5월 4번째

[아래는 제가 발행하는 뉴스레터인 Balanced의 내용입니다. 매주 월요일날 오전에 발송한 이후 3주 늦게 브런치에 올립니다. 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다음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https://balanced.stibee.com/]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 효율성의 노예가 됩니다. 숫자로 만들어진 다양한 지표들을 통해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비교하게 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큽니다. 메타인지의 과정은 현재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상태를 비교하는 척도들이 대개 다른것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교를 통한 현재의 상황의 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의 모색은 대상이 회사일 경우 상당한 효과를 가집니다. 회사라는 도구 자체가 자본과 인력의 투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해 내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많아서 숫자로 그려진 현재의 상태를 비교로 파악하는것은 무엇보다 확실한 메타인지의 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매출액을 키우고 이익을 포기하는 회사라고 할지라도 결국 장기적인 목표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숫자를 만들고 비교하는 절차를 통해서 효율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회사를 만들고, 키우고 분석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사람에게 대입한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먼저 사람의 인생에 주어진 목적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생존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생존만을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습니다. 숲속에 사는 미생물들도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를 오로지 생존으로 규정하는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타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인간의 행동은 생존만을 추구하는 생물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점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조차도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상당부분 진로를 고민하고,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다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떠면 어떤 사람은 평생에 한번도 그런 이유를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큰 다양한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너의 삶의 이유는 이런것이다 라고 정해준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다른것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도 되니까, 인생의 목표는 명확해 지고 방황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좋을것 같은 삶이지만, 인류는 많은 시간을 이런 가르침에 의해 살아왔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종교들은 이런 형태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했고, 때로는 십자군 전쟁이나 다른 어처구니 없었던 종류의 분쟁들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게 되면서 맹목적으로 한가지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의 수는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우리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종교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또다른 삶의 한가지 목적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삶의 목적은 대부분 돈이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말이죠.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증식을 추구하는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증식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자본의 증식"만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돈이겠죠. 권력의 쟁취나 사회적인 지위와 같은 다른 요건들도 생존을 위해서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삶의 안전성을 더해준다는 측면에서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궁극적인 요소는 돈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모두들 돈을 찾는 과정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됩니다. 생존을 위해서 매우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죠. 


이 과정은 회사가 성장하기 위한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목표가 장기적인 이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면 회사를 성장시키듯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적합할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고,분석하기 위해서는 숫자가 필요합니다. 나의 재산의 현황을 분석하고, 나의 수익을 만들어 주는 구조도 분석하고, 재테크 상황도 면밀히 분석합니다. 투자 대상이 되는 나의 거주지도 분석해서 더 값이 오를만한 곳으로 가야하는 최선의 선택을 내립니다. 아이들은 더 돈을 잘벌것으로 예상되는 인생을 살아야되기 때문에 비교를 통해서 유사한 과정으로 교육을 시켜야겠죠. 


그 결과 나와 아이들, 우리 가족은 되도록 안정적이고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수도 있겠죠. 인생의 목표에 우리는 도달했습니다. 매우 효과적으로요. 이제 삶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내 몸의 주주들의 기쁨이 극대화되었을까요? 주식회사의 목표가 주주들의 부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 목표인것처럼 말이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디에도 행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효과성만을 추구하는 삶에는 행복이란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에서도 행복은 존재할까요? 


우리회사는 행복을 추구하는 곳이야. 돈은 못벌어도 직원들만 행복하면 된다. 그게 목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존재하는 목적을 위해서도 존재하면 안되는 회사의 구조입니다. 회사는 이익을 영원히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비영리와 같은 특수한 조직을 제외한 기업은 생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회사는 개인과 다른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회사를 만들고, 운영을 잘하기 위해서 효율성있는 경영을 하는것 뿐입니다.  이익을 증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회사라는 존재와,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목적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한 비교행위는 행복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개인의 삶은 비교를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본주의 체계의 중심에서 일을 하며 먹고 살아갑니다. 누구보다 자본주의 체계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의 목적은 부의 증식이 아닙니다. 부의 증식은 밥을 먹고 살아가는 제 비루한 몸과 가족들을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행위일 뿐입니다.그러므로 비교를 통한 효율성의 극대화는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서로 비교가능한 인생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개념일 뿐입니다. 


한국 사회가 개인들의 삶을 비교하는 단계를 고도화할수록 우리는 나락에 빠질 것입니다. 자본의 증식이라는 한가지 목표에만 모두 몰두해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비교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가족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 인프라는 몰락하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는 이 몰락의 현상들을 끊기 위해서 가장 첫번째 해야할일은 각자 자신의 삶의 목표를 비교대상을 통해서 찾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삶이 유한하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겠죠. 


이미 많이 늦은것 같지만, 이제부터라도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말이죠. 

작가의 이전글 통계를 믿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