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용어 #회사어
대학교 1학년 강의에서는 교수님을 ‘선생님’이라고 잘못 부르는 소리가 종종 들려온다. 급식에서 학식으로 개학에서 개강으로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단어들을 배우게 된다. 마찬가지로 회사에 가면 회사원들이 많이 쓰는 단어들을 새롭게 배우게 된다. 구식(구내식당), 어린이날(팀장님 없는 날) 같은 통용되는 단어부터 특정 업계에만 존재해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도 있다. 오늘은 처음 회사에 들어와 배운 몇가지 단어를 공유해보려한다.
‘광팔이’란 보통 고스톱 칠 때 쓰는데, 게임에 참가하지 못한 잔여인원이 좋은 패인 광을 돈 받고 팔 때 쓰인다. 회사에서는 조금 다르게 '광(빛)나는 일을 하다, 광(빛)을 내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사실은 실속 없고 실체 없는 일일지라도 겉보기에 그럴듯하고 빛나 보이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흔히 쓰여지는 광파는 방법으로는 핫한 신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있다. 그냥 청소기 말고 'AI 청소기', 그냥 세탁기 말고 'AI세탁기'. 하지만 광도 어느정도 실체가 있는 상태에서 팔아야지 한도 끝도없이 블러핑을 치면 답이 없다. 빛나는 무언가를 현실로 만들어야하는 남은 실무진만이 두고두고 괴로워지게 된다. 한편 광판 사람은 책임도 없이 날개를 달고 훌훌 날아가버리는 것이 이 판의 씁슬한 결말으로 남게된다.
‘싸바리’는 물건 포장 시 고급종이, 천, 가죽 등을 겉지로 하고 하드보드지 또는 두꺼운 골판지를 속지로 한 박스를 말한다. 고급 물건 포장 시에 주로 사용되지만 B2B, B2G 업계의 경쟁PT 시에 제안서를 담을 겉 포장지를 싸바리로 마감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싸바리를 제작하고 있다보면 “이렇게까지 해야해?”라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지만 치열한 경쟁 상황 속 더 이상 상품이나 가격에서 차별화를 둘 수 없을 때 마지막 한 끝의 간절함과 진실함을 전하기 위한 무기로 '싸바리'를 꺼내든다. 간혹 ‘고급진 싸바리’라는 말을 들으면 된소리 발음 때문인지 마치 ‘소리없는 아우성’과 같은 역설이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일을 하기에 부침이 있는 것은 알고 있으나…’는 말을 듣고 ‘부치긴 뭘 부쳐. 부침개냐?’, ‘뭘 붙힌다고? 스티커냐?’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보니 ‘부침’이라는 단어는 ‘힘에 부친다’의 부침을 뜻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부침은 ‘물 위에 떠올랐다 잠겼다 하는 모습, 세력의 흥망성쇠’를 뜻하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 장애물이 많은 상황을 얘기할 때 쓴다. 특유의 '좋은게 좋은것', '둥글게 둥글게' 회사문화로 인해 부정적인 단어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그 일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 일은 허들이 많습니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기보다 ‘그 일을 하기 부침이 있는줄 압니다만은~~’하고 돌려말할 때 쓰여진다.
처음에는 낯설고 외계어처럼 들렸던 회사어를 "물론 광팔이용 프로젝트이고, 어려운 프로젝트라 부침이 있겠지만...그래도 싸바리로 마감도 치고 잘 마무리해보시죠" 자유자재로 구사할 때 한층 더 고여감을 느낀다.
여러분의 회사/업계에서만 쓰이는 제2외국어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