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출근 #첫엘리베이터
목깃이 하얀 새로 산 셔츠, 칼주름 잡힌 검은 슬랙스, 앞 코가 깨끗한 깔끔한 구두
신발장 거울 앞에서 두어번 인사하는 연습을 해본다.
“안녕하십니까!!!” 너무 오바하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원래 인사할 때 말 끝을 올렸던가?
“안녕하세요~” … 모르겠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20년의 ‘등교길’이 오늘부터는 ‘출근길’이 된다
직장가 큰 빌딩 앞 회전문은 늘 지나치기만 했을 뿐
유리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건물 층층이 사람들이 몇백명씩 있어서
큰 엘레베이터가 6대나 있어도 한 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니 그 전에 지하철 승강장에서부터 줄을 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늘은 한 달 간의 연수 끝에 정식으로 팀 배치를 받는 날이다.
10명의 신입사원이 8개의 팀에 나뉘어져 배치되고,
신입사원이 먼저 희망하는 팀을 1,2순위로 적어내는 방식이었다.
학연, 지연 각종 인맥을 수소문해 어디가 좋은 팀인지 먼저 알아본 발빠른 동기,
그 동기 주변으로 좋은 정보를 찾아 모여드는 동기,
먼저 연락할 용기도 없고 정보도 없어 팀이름에서 오는 느낌에 의존하는 나.
너도나도 가고 싶어했던 ‘AI혁신팀’, ‘DX전략팀’ 같은 미래지향적 팀은 떨어졌고,
누구도 지원하지 않아 자동으로 ‘A’팀으로 배치되었다.
어느팀에 배치되었냐는 한두사번 윗 선배들의 질문에 ‘A’팀에 배치되었다고 하니
다들 똑같이 ‘헉..힘내세요…’, ‘..하하..신입은 괜찮을거에요’ 하는 반응에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수십명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의 한 편에 신입사원 10명이 나란히 앉았다.
곧 인사담당 직원 몇 명을 포함해 8명의 팀장님이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고,
짧은 인사와 함께 상견례가 마무리되었다.
처음 뵌 팀장님은 인상좋은 이웃 아저씨 같았지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팀장님을 종종걸음으로 열심히 좇아간 끝에
앞으로 365일 중 휴일 제외한 워킹데이 240일을 매일 오게될 내 자리로 왔다.
연세가 있어보이는 부장님과 어딘가 지쳐보이는 과장님,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것 같은 대리님을 만났다.
“안냐세야~,,”
“안냐~심까,,,ㅎ”
아침에 연습했던 당찬 인사가 무색하게 말끝을 흐린 어색한 인사
망한 인사를 뒤로 한 채 자리에 앉는다.
한동안 공석이었던 자리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중앙 공용 테이블에 놓인 깨끗한나라 물티슈를 뽑아 책상부터 깨끗이 닦고
구석에 방치된 말라 비틀어진 미니 선인장 화분을 버렸다.
...
시간은 흘러 흘러 6시 퇴근 시간이 되었다.
다른 분들은 지금이 6시인지 몇시인지 전혀 모르는 듯 일하고 계셨고,
나는 그저 화면 오른쪽 아래 올라가는 1분, 1분 하염없이 시간만 바라보며 의미없는 클릭을 계속했다.
“오? 아직 안 갔어요? 얼른 들어가요” 라는 차장님의 은혜로운 허락이 떨어졌다.
“아..아니..예...넵..ㅎㅎ”
노트북을 닫고 사물함에 잘 넣어두고 가방을 챙겼다.
하루종일 한 일이라고는 책상 닦고 선인장 버리기 밖에 없었는데
왠지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첫 만남은 너무 어렵다.
계획대로 되는게 없어서.
새학기의 학생에게도,
첫 출근길의 신입사원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