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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장 Nov 12. 2017

15. 존재의 감각

#미야코섬_ 마에하마 비치

캐리어를 끌고 호텔방에 들어선다. 아이보리색 커튼이 프로젝터의 빛을 받은 텅 빈 스크린처럼 환하다. 그 앞에 놓인 의자가 침대 앞으로 오후의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미닫이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선다. 소철이 자라는 잔디밭 뒤에 수영장이 있고, 잔잔한 바다의 수평선을 따라 카키색으로 물든 구리마섬이 가로로 달리고 있다.  


짐 정리는 뒤로 미루고 마에하마 비치로 나선다. 현지에서 ‘마이파마’라고 부르는 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해마다 4월에 열리는 트라이애슬론 미야코지마 대회의 수영 출발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입자가 고운 크림색 모래에 찍힌 발자국이 석고 틀처럼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모래에 남긴 흔적은 오래가지 않는다. 파도가 풀어낸, 오건디로 짠 얇은 레이스의 물결에 금세 지워지고 만다.


태양은 화선지에 떨어진 황색 물감처럼 번져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다. 빛의 가장자리에 걸린 구름은 역광 탓에 다이어트를 한 듯 홀쭉하다. 구름의 뼈와 내장이 햇무리에 녹아든 것만 같다.


남국의 해는 ‘힘세고 오래가는’ 건전지를 닮았다. 느릿느릿 서쪽 바다로 이울어 오래도록 노을의 여운을 남긴다.


하늘색 비치베드에 걸터앉아 바다를 본다. 무지개가 찍힌 민트색 티셔츠를 입은 여자아이가 모래 위를 뛰어다닌다. 쌍꺼풀이 없는 눈에 통통한 볼을 하고 있다. 그 뒤를 빼빼 마른 오빠가 쫓는다.



남매는 둘 다 팬티 바람이다. 두 발로 파도를 차며 4분의 3박자 왈츠를 춘다. 부모는 렌터카를 몰고 미야코섬을 도는 여행객일 확률이 크다. 해변 근처에 차를 대고 산책을 나왔다, 아이들이 훌렁 벗어던진 바지를 주워들고 뒤따르는 중이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바다로 뻗은 잔교에 오른다. 해를 등지자 물색이 살아난다. 식용 색소를 풀어놓은 이온음료 빛깔이다. 작은 보트를 지탱하는 힘은 부력이 아닌 중력 같다. 파도를 타고 잔교의 널이 흔들리자, 그제야 부력이 느껴진다.


잔교 끝에 선체의 가운데가 뻥 뚫린 카타마란 요트 한 척이 닻을 내리고 있다. 요트의 이름은 골든벨[GOLDEN BELL]. 우리말로 하면 개나리 호다.

스웨트티셔츠를 입은 남자 스태프가 사다리에 한 발을 올린 채 산신을 조율하는 중이다. 호텔의 손님을 태우고 바다로 나가 연주를 들려주겠지.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걷는다. 흰 모래 위로 불거진 거무스름한 석회암에 올라 선착장 쪽을 돌아본다. 멀리 구리마 대교가 보인다. 다리는 일직선이 아니다. 이스트를 넣은 통밀빵처럼 가운데가 살짝 부풀었다 꺼지며 구리마섬으로 이어진다.


발밑을 보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무릎을 세우고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 옆에 누가 있든 개의치 않고 스마트폰 액정을 뚫어져라 보는 중이다.


학생 주변에는 단단한 발자국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개중에는 맨발도 있고, 빨래판 무늬의 신발 자국도 있다. 언뜻 산만해 보이는 것들도 찬찬히 뜯어보니 방향이 잡힌다. 사막이 아닌, 해변의 모래 위에서 길을 잃는 사람은 드물다.  


남학생의 등짝에 자꾸 눈길이 간다. 정확히 말하면, 등짝의 세 배 길이로 늘어져 엉덩이 뒤로 뻗어나간 그림자다. 그림자에는 표정이 없다. 그런데 그 무표정이 표정으로 읽힌다. 아이의 내면에서 어떤 감정과 의식이 누런 쇳물로 녹아, 모래 거푸집 안 지금의 형태로 굳어버린 것만 같다.


그림자가 실체이고, 저 아이야말로 그림자의 반영이 아닐까?


아이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오른손의 엄지를 까닥여 새로 띄운 창을 밀어 올릴 뿐이다.



도큐 리조트 호텔, 구리마 대교, 잔교 끝에 닻을 내린 개나리 호, 모래에 찍힌 발자국…. 풍경을 이루는 이 모든 대상이 내 안의 심상[心想]을 스캔해서 3D 프린터로 뽑아낸 미니어처 같다. 내 그림자마저도.


눈이 마주친 그림자가 화들짝 놀라 제 몸뚱어리를 버리고 달아난들 개의치 않을 작정이다. 이곳은 플라톤의 머릿속에 떠오른 형이상학의 동굴이 아니다. 마에하마 비치에선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늦은 오후의 햇살로 물든 해변을, 다만 걸을 뿐이다.

주말에 북한산을 찾아 둘레길을 걷듯, 발에 닿는 탄탄한 모래를 느끼며 미루적미루적 걷는다. 그러다 보면 풍경은 어느새 눈에 익어 더는 새로울 것이 없어진다. 그렇게 존재의 감각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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